“왕이 애 봐줄테니 8시까지 일해”…공감대 못 얻는 늘봄교실·돌봄확대

“왕이 애 봐줄테니 8시까지 일해”…공감대 못 얻는 늘봄교실·돌봄확대

3월부터 오후 8시까지 늘봄교실 시범 시행
서울시교육청도 밤 10시까지 서울시내 12곳 유치원서 밤 10시까지 돌봄
맞벌이 부부들 “취지 이해하지만…근로 환경 개선부터”

기사승인 2023-02-16 06:00:05
돌봄교실. 쿠키뉴스DB

최근 정부가 교육·돌봄 국가 책임 강화의 일환으로 내놓은 늘봄학교가 시범 시행을 코 앞에 두고 있지만 현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는 공식 유튜브를 통해 늘봄학교 등 돌봄 확대 홍보에 나섰지만 되레 시민들의 쓴소리만 쏟아진 성토장이 됐다. 

정부는 지난 8일 공식 유튜브에 ‘[국정과제 여든 네 번째] 초등학교 늘봄학교 저녁 8시까지 운영(왕과 신하 편)’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내용을 보면 임금은 스티브잡스를 연상케하는 한 신하에게 백성의 편의를 위해 스마트폰 개발을 지시하면서 “퇴근 전에 설계를 먼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신하가 “오후 8시까지면 가능하지만 오후 5시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해서 송구하다”고 답하자 임금은 “오늘만 부탁하자. 대신 네 아이를 내가 돌봐주겠다”고 말한다. 

임금은 신하의 아이를 돌보는 동안 곁에서 업무를 보던 신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신하가 “아이는 전문가가 돌봐야 한다”며 임금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취지의 말을 하자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부모들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초등학생들을 (오후) 8시까지 잘 돌봐줄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라. 그리고 모든 마을에서 시행토록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서 “그렇게 모든 마을은 행복해졌습니다”라며 내용이 끝난다. 

늘봄학교의 도입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홍보영상이다. 늘봄학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오후 8시까지 방과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오는 3월 개학에 맞춰 인천·대전·경기·전남·경북 등 5개 지역의 200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을 앞두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정부의 늘봄교실 홍보 영상을 회사의 편의를 위해 직원이 더 오랜 시간 근무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시설에서 그만큼 아이들이 돌보겠다는 내용으로 해석했다. 

직장인 김모(40)씨는 “아빠도 정시에 퇴근해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회사를 위해 국가가 나서서 부모는 늦게까지 일하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실제 해당 영상 댓글에는 김씨와 같은 부정적 의견이 대다수다. 한 누리꾼은 “왕이 시킨 일을 해야 하니 부모는 집에 못가고 애들을 8시까지 봐줘야 하는 선생님도 집에 못가고 선생님 아이들을 보는 선생님도 집에 못가고”라며 “가정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지 못해 마을 모두가 불행해졌다. 오직 왕 만이 행복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부모의 마음으로 돌보지 말고 부모가 돌보게 좀 하자” “내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국가가 조장하는 아동학대”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거점 유치원 12곳을 선정해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위해 오후 10시까지 돌봄을 제공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돌봄 확대로 맞벌이·한부모 가정 등은 돌봄 부담을 덜 수 있어 환영하면서도 가정에 육아 시간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만 3세 자녀를 둔 워킹맘 이모(38·여)씨는 “자영업자나 학습지 교사, 간호사, 야근이 많은 업종에 종사한다면 급할 때 믿을 수 있는 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야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지 않을 수 있도록 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먼저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로 가족에게 자녀 돌봄의 도움을 받고 있는 최모(37·여)씨는 “아무리 전문가여도 아이는 부모가 보는게 제일 좋지 않을까. 늦게까지 돌봄을 해주는 야간형 어린이집에 보내곤 있지만 오후 5시면 친구들이 거의 없다”라며 “오후 8시, 10시까지 국가에서 돌봄을 해준다 해도 못 맡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젠더 관점의 사회적 돌봄 재편방안 연구(Ⅰ):개인화 시대 돌봄정책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의 돌봄 기관의 경우 오후 4시부터 퇴근 시간대 전까지는 학원(최대 7%), 할머니 돌봄(최대 약 12%) 등 사적 자원 동원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돌봄 기관의 절대적 돌봄 시간 부족보다는 이 시간대 돌봄의 질에 대한 부모의 신뢰가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과제 여든네 번째] 초등학생 늘봄학교 저녁 8시까지 운영(왕과 신하 편). 정부 유튜브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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