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16일 서울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 생일 기념행사에서 처음으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됐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따라 기미가요 연주가 결정됐다는 설명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6일 오후 이같은 일왕 생일 기념행사장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행사장에서는 애국가와 함께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 때문에 이전까지 국가를 트는 것을 미뤘으나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권이 대일 관계 개선을 지향하고 일본 정부도 어색한 양국 관계를 벗어날 호기라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는 그간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틀지 않은 것에 대해 “참석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려해 왔지만 과도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가사에는 ‘임의 치세는 1000대에 8000대에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돼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내용이 있다. 기미가요를 반대하는 이들은 임, 즉 일왕 치세가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는 점에서 군국주의 일본을 상징한다고 비판한다.
일본 내에서 태평양전쟁 후 폐지됐던 기미가요는 1999년 국가로 법제화됐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졸업식 등에서 기미가요를 제창을 하지 않아 충돌이 있을 정도로 오랜 논란의 대상이다.
욱일기와 기미가요는 사실상 우리 국민들에겐 군국주의의 잔재이자 침략의 상징으로 거부감이 크다. 일본 극우단체들은 군복을 입고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기미가요를 부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연예인 등이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거나 방송에서 기미가요가 나오면 국내에선 비판 목소리가 쏟아진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기미가요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으로 취급된다.
지난 2014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 자위대 60주년 기념행사를 국내 한 호텔에서 계획했다가 국민정서 등을 이유로 대관 하루 전날 취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산케이를 통해 “대사관 주최 행사에 국가 연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 이번에 당연한 모습을 하자고 해서 한국 국가와 함께 기미가요를 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일왕 생일행사가 열린 건 2018년 12월 이후 4년 만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2019년 5월 즉위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는 외교부 이도훈 2차관도 참석했다.
이날 행사가 진행된 호텔 앞에서는 반일 시민단체들이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의 반응도 대부분 싸늘하다. 트위터 등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관련 뉴스 댓글 등에는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겼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일왕 생일 축하용 기미가요를 듣게 되다니” “아무리 그래도 기미가요는 아니지” “선 넘었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