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이기적이라 출산 안 한다고요?”…저출산으로 반영된 잿빛 ‘청년 현실’

“MZ세대가 이기적이라 출산 안 한다고요?”…저출산으로 반영된 잿빛 ‘청년 현실’

복지부, 제1차 ‘미래와 인구 전략’ 포럼 개최
“성인 인식 시기 늦어져…자립지원책 필요”

기사승인 2023-02-22 17:14:44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1차 미래와 인구 전략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최근 미디어를 통해 ‘MZ세대는 무책임하다’는 편견이 생긴 것 같습니다. MZ세대가 이기적이라서 결혼, 출산도 안 한다고 말하는데요. 정말 청년들이 무책임해서, 이기적이라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걸까요. 오히려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혼, 출산과 멀어진 것 아닐까요.”

보건복지부 2030 자문단 최지원씨는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1차 미래와 인구 전략 포럼’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이 자리에서는 정책을 설계할 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청년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청년들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책 뒷받침 없이 저출산 문제의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한다는 지적이다.

청년 자문단 최선아씨는 “출산하는 사람은 애국자라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국가에서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출산을 결심하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류태림씨도 “20, 30대는 부모 세대가 희생하는 것을 보고 자라온 세대다. 경력단절을 겪은 어머니를 보고 자라며, 저도 육아휴직을 쓰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다”면서 “청년들이 불안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과감한 저출산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변한 사회·경제 상황… 자립 지연으로 결혼연령 ↑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인 편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의 ‘코로나19시대, 한국인 가족 및 결혼 가치관 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0년 25~49세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혼 남성의 65.7%, 미혼 여성의 47.3%가 결혼을 원했다. 기혼·미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상적인 자녀 수가 2명이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결혼을 원해도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발제를 맡은 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 원인을 2000년대 이후 급변한 한국사회 구조에서 찾았다. 

유 연구위원은 “청년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결혼과 출산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며 “청년들의 자립 지연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부모 세대의 ‘결혼 적령기’가 20대 중반이었다면, 현재 청년 세대는 30대 초반 선에서 형성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여성 평균 24.78세, 남성 27.79세에 처음 결혼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여성 31.08세, 남성 33.35세로 6년 가량 늦어졌다. 

사회 진출을 위해 받아야 하는 고등교육 기간이 길어졌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됐다고 유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경쟁이 과열되자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청년들도 나타나며, 자립 지연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교육·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이른바 ‘니트(NEET)족’ 청년 비율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유 연구위원에 따르면 취업 준비나 심신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쉬고 있는 청년 비율이 2020년 8.44%에 달했다.

청년들의 사회 진출 연령이 늦어지면서, 30세가 지나도 스스로를 성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혼란 상태를 경험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유 연구위원이 청년들의 주관적 인식 조사를 한 결과 만 19세, 성인 연령이 지났음에도 스스로 성인이 됐다고 자주·항상 느끼는 비율은 30세(56%)에서야 절반을 넘었다. 25세(37%)에서 성인이 됐다고 ‘자주·항상 느끼는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유 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선진국들과 같이 ‘새로운 성인기(emerging adulthood)’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주관적인 성인인식이 지연되고, 이로 인해 결혼과 출산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성인 이행기’라고도 불리는 새로운 성인기는 청소년에서 성인기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독립하기 위해 탐색을 하는 시기를 말한다. 

정부 강요 안 통해… 자립 기반 마련이 우선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 자립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을 하라고 국가에서 인식 변화를 교육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연구위원은 “성인 이행기 청년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지이다. 자립 기반이 마련될 경우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경로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며 “청년 정책과 저출산 정책 역시 개인의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사후적인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의 지향에 기반한 선택과 이를 실현하고 안정화시키기 위한 자립지원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슬기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청년들에게 결혼하라고 인식변화를 강요하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청년 스스로 자녀를 갖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부모와 노동자의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제도 개선이 요원한 이유는 여전히 자녀 돌봄 문제를 여성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며, 남성과 여성 모두의 문제가 돼야 양육자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가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저출생 대책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저출산 대응을 위해서는 결혼과 임신, 출산의 당사자인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며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일터와 삶터가 경쟁에 매몰되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다음 달부터 200여명 규모의 ‘청년제안단’을 구성하고, 이날 포럼에서 제시된 내용 등을 청년제안단의 논의를 거쳐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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