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군은 한순간 학폭 가해자가 됐다. 평소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B군을 피하려다 그를 밀쳐 넘어뜨린 사건이 문제가 됐다. 병원에 입원한 B군은 A군을 학폭심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제 학교 폭력(학폭)을 행사한 가해 학생은 전보다 더 큰 불이익을 받는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기존 학교폭력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된 학폭 가해 학생의 징계 이력을 정시에 반영하고 보존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합당한 처벌의 필요성과 함께, 학폭 처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려 징계를 받았다가 소송 끝에 구제받는 일도 있다. A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모호한 학폭 기준, 학폭 신고 악용하는 사례도
현실에선 A군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피해자가 가해 학생을 지목하고 처벌을 원하면 학폭심의위원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학폭 상담 카페에 한 학부모는 “아이가 학폭 가해자 옆을 지나가다 학폭 가해자로 오해받아 학폭위에 이름이 올라갔다”고 적었다. 그는 “(학교 측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학폭에 이름이 올라간 이상 뺄 수 없다며 교육청 판단을 받으라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고 황당해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도 “혼잣말하면서 지나가는 아이를 다른 아이가 언어 폭력으로 신고했다” “먼저 신고한 측이 갑”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학폭의 범위가 넓고 기준이 모호해 누구나 가해 또는 피해 학생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도 억울하게 가해 학생이 된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학폭 전문인 이호진 법률사무소 유일 변호사는 “물론 정당한 피해자가 더 많다”면서도 “하지만 전혀 피해 사실이 없는데 감정적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가 째려봤다거나 지나갈 때 중얼거리며 내 험담을 한 것 같다 등의 추측성 신고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다른 학폭 전문 변호사 C씨는 “가해 사실이 있음에도 사안을 축소해 상담하거나, 실제 억울하게 학폭위에 가는 경우도 있다”며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고 전후 관계를 살펴야 한다”고 털어놨다.
김석민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 팀장은 “피해에 대한 증거가 분명한데도 (피해) 아이가 먼저 가해 학생으로 신고가 된 경우가 있다. 또 학폭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상대가 말을 듣게 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이미 가해 학생으로 낙인찍힌 상태에서 사안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들”이라고 전했다.
“처벌 강화, 법적 다툼 증가 등 부작용 우려”
학폭 상담사, 교사, 변호사 등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강화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한다. 김석민 팀장은 “처벌 수위를 강화하면 교육 측면에서 아이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생기부를 정시까지 반영한다면 특정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학폭을 조심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내신 성적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유효할 뿐, 수시나 정시 등을 통해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학생들에겐 타격이 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학폭을 입시와 연계하면 학교를 법적 다툼의 장으로 만들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가해 학생의 엄마가 된 경험담을 책으로 내고 학폭 상담을 해 온 정승훈 스마트에듀빌더 대표는 “부모들은 생기부에 기록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생기부 기재를 조건부로 유보했지만, 완화된 조치를 다시 강화하면 생기부에 기록되지 않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다툼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가해 학생 행정심판’ 처리 건수는 학생부 기록이 시작된 2012년 175건에서 2019년 893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학폭을 예방하고, 공정하게 판단하려면
교사들은 학폭 사건을 엄벌하는 것보다 예방교육과 관계 회복 방안이 더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안양시 한 중학교에서 학폭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 D씨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 같은 사건은 사실 흔하지 않다”며 “대부분 친구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 학폭 예방 교육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학폭 상담 교사 E씨 의견도 같았다. 그는 “모든 아이들이 사이좋을 수는 없다. 쌍방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화해도 곧 잘한다”며 “학교는 친구를 사귀는 곳이기도 하지만, 양보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학생들의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별도의 교내 공간 등 학교가 여건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승훈 대표는 “피해자 회복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며 “최소 한 학년마다 각각 상담사를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피해 학생이 상담 교사를 찾아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또 “(큰 문제가 생기기 전)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 교사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하는 것도 학폭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학폭심의위원회의 전문성 강화에 주목했다. 이호진 변호사는 “아이 (인생에) 중요한 징계 결정을 하는 만큼 학폭 위원이 어느 정도의 리걸 마인드(법적 사고력)를 갖춰야 한다”며 “사실에 입각해 사실관계와 증거를 판단해야 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한 학폭위원이 적지 않다. 폭행과 상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벌을 내리기 전 최소한 법률적인 지식을 갖춘 변호사나 경찰 등을 학폭위에 필수로 참석하도록 해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폭위가 더 적극적으로 조사할 권한을 가지는 방법도 제안했다. 그는 “학폭위는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재는 제출한 서류만 보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징계를) 결정한다”며 “허위로 사실 확인서를 작성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학폭위가 사건을 조사할 권한을 가지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미다.
김석민 팀장도 학폭위의 전문성을 높이고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수사 권한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학교 전담 경찰관을 학폭심의위원회에 투입하는 것이 방법”이라며 “일부 학교나 교육청에선 학교 전담 경찰관이 투입되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경찰관이 학폭 사안을 조사하면, 중립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어 학부모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