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후 인정된 피해자 판정, 지원금은 단돈 47만원” [가습기살균제, 그 후]

“7년 후 인정된 피해자 판정, 지원금은 단돈 47만원” [가습기살균제, 그 후]

정신적·육체적 피해 극심...“마지 못해 살아”
제대로된 보상 없어...원인 규명이 문제
“끝날 때 까지 끝난 거 아냐...억울함 풀어야”

기사승인 2023-05-19 06:00:06
대한민국 최악의 ‘화학 참사’라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습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만 1815명.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도 피해자들의 곡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책임 규명도,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된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쿠키뉴스가 기업 추가 분담금 논란으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 가족들이 피해자들의 신발 등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명에 인공심장까지…병원 입원만 25년

지난 16일 만난 가습기 피해로 실명한 지 3년 째인 허기준(남·77·가명)씨. 2020년부터 허씨는 눈이 멀면서 귀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현재는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식사는 물론 거동조차 혼자 할 수 없다. 매일 오전 9~12시 요양보호사가 집에 들러 허씨의 일상 생활을 돕고 있다. 피해 등급으로 따지면 허씨는 중증인 3단계에 해당된다. 
 
허씨는 “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내 몸을 잘 아는데 가습기살균제 요인이 90%”라며 “대학 병원을 가봐도 '약물 중독에 의해 눈이 멀었다'고만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100%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하려고 해도 이제 눈이 안보여 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허씨가 병원 신세를 진 기간은 무려 25년. 한 달에 한 두번 꼴로 퇴원하는 생활을 밥 먹듯 했다. 그럼에도 몸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됐다. 온갖 합병증으로 번졌다.

현재 인공심장을 달고 있는 허씨는 입원 기간 동안 폐렴 수술도 수차례 받았다. 몸무게도 절반 이상 줄었고, 비뇨기과 계통도 상태가 좋지 못하다. 문제는 병을 인지하기까지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씨는 “증상이 있으면 금방 아는데 뚜렷한 증상도 없고 자연적으로 합병증이 온다”면서 “예를 들어 폐렴 치료를 받고 있으면 신장 질환, 간질환이 생긴다. 전립선 비대증이나 전립선 암 같은 합병증이 계속 온다”며 “즉각적인 반응이 아닌 고통이 서서히 온다. 소화가 전혀 안되고 두통이 계속되던가 하는 식이다. 건강했을 때 몸무게가 76kg였는데,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나오니 38kg까지 빠졌다”고 털어놨다.

연합뉴스

허씨의 아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가습기 흡입으로 20여년 간 병원 생활을 하다 2015년 12월 19일 세상을 떴다. 각고의 기다림 끝에 허씨의 아내는 지난해 피해 인정을 받았음에도 구제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허씨는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 아니냐. 가습기 살균제 판정을 하면서 피해자라고 인정해 놓고 보상을 안해 준다면 앞뒤가 안 맞는거 아니냐. 우리 같은 힘 없는 서민들은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하냐”고 울먹였다.

허씨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허씨는 2016년 5월 10일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첫 신고를 했다. 이후 7년여가 지난 올해 2월 피해자 확정 판정을 받았다. 매달 들어오는 피해 지원금은 47만원. 그간 요양 급여비 명목으로 정부에서 받은 1500만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허씨는 친지를 비롯해 지인, 은행 대출 등으로 병원비를 충당해 왔다. 

허씨는 “가습기로 폐인이 되고 나서 그간 죽어버리려고 많은 시도를 해왔는데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변한 건 없다. 정부에서 피해자들을 생각해준다는 것도 이제 믿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용덕 씨.   사진=박효상 기자

가습기 피해로 온갖 합병증 앓아
 

또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용덕 씨(남·89). 김씨는 폐암 수술 이후 극심한 합병증을 앓고 있다. 심방세동과 피부염, 수면 장애 등 합병증 종류만 수십가지다. 

부정맥의 하나인 심방세동은 별다른 치료약이 없어 고지혈증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다. 

온갖 병이란 병은 다 앓고 있다는 김씨는 “고지혈증 약을 먹은 지 5~6년 정도 됐다. 5년 전 척추 수술도 했다. 목떨림은 물론 수면 장애도 심해졌고 냉한증이 생겨서 온몸이 오들오들 떨린다”면서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모두 가습기살균제 이후 생긴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운동광'이었다는 김씨는 가습기 피해를 입기 전에는 굉장히 건강한 편이었다. 각종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다. 김씨는 대한노인회서울시연합회 수석부회장, 대한노인회구로구 지회장, 광산김씨 강북지회 종친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하지만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고, 지팡이에 의지해 가까운 근거리만 외출이 가능했다.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은 김씨는 5년 여간 암 치료에 매진했다.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도 운동을 놓지 않았다. 이후 몰라볼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김씨는 국립암센터로부터 '폐암 극복' 감사 표창도 받았다. 

김씨는 “운동을 죽기 살기로 했다. 지금도 아침, 저녁마다 런닝머신을 뛰며 운동을 하고 있다”며 “나같은 운동 광이나 살아 있지 폐암 수술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16년 12월 피해자 접수를 했고 2020년 12월 19일 정부로부터 피해자 확정 인정을 받았다”면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선 구제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공문도 보내 왔지만 여태 구제 급여 지원금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5~6개월 이내 진단서를 갖고 오라는 게 핵심이다. 그 전 조사와 수술은 묵살하고 최근 현재 상태를 가져오라는 게 말이 되냐”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난지 12년이 지났다. 최근에 가습기를 사용한 게 아닌데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씨는 “결코 끝날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피해자들이 끝까지 뭉쳐서 억울함을 풀어야 하지 않겠냐. 이 한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김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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