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술자격 시험 답안지 600여건이 채점도 하기 전에 실수로 파쇄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2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진행된 2023년 정기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시 시험에 응시한 609명의 답안지가 공단 실수로 채점도 전에 파쇄됐다.

서울지역 시험장 가운데 한 곳인 연서중에서는 지난달 23일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의 수험자 609명이 시험을 봤다. 주관식을 서술하는 필답형 실기시험으로, 60점을 넘으면 합격이다.

시험 종료 후 답안지는 포대에 담겨 공단 서울서부지사로 운반됐다. 이후 인수인계 과정에서 착오로 답안지가 담긴 포대는 채점센터로 옮겨지지 않았다. 응시자들이 제출한 모든 답안지가 그대로 파쇄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사실은 시험을 치른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20일에야 파악됐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채점은 즉시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가자격시험이 매우 많다. 일정에 따라 채점하는데 그 (사고가 일어난 시험지의) 채점을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피해를 본 응시자들에게 추가시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다음달 1~4일 또는 24~25일 중 원하는 날에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 수험 일시와 장소를 선택해 응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당초 예정된 시험 합격자 발표일인 9일에 전체 시험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응시를 희망하지 않는 수험생은 수수료를 환불받을 수 있다.

다만 피해 응시자를 제외한 응시자의 불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09명의 피해 응시자가 재시험일까지 추가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측면에선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어 이사장은 “재시험의 경우에도 동일한 난이도로 출제하게 돼 있다”며 “(시험 날짜마다) 문제가 다르다. 6번 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단 측은 ‘피해 응시자에 대한 추가 보상안 검토 계획’과 관련해 “교통비, 재시험을 위한 시간 등 시험을 치기 위해 들어가는 총 비용을 보상 비용으로 산정할 생각”이라고 했다.

어 이사장은 “국가자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공단이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 여러분께 피해를 준 점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