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말라리아 위험지역(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에서 하룻밤 묵고 헌혈을 하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제한지역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돌아오면 말라리아 감염에서 안전하다는 것인지, 제한지역에서 하루를 있든 몇 달을 있든 똑같이 1년간 헌혈 방식에 제한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을 둘러싼 모호한 기준, 그리고 부족한 홍보 탓에 시민들의 물음표가 꼬리를 문다.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김규현(가명·43) 씨는 최근 오랜만에 헌혈의집을 찾았다가 헌혈 없이 나온 경험이 있다. 지난달 가족들과 함께 경기 파주의 한 펜션에서 이틀간 지내고 온 게 발목을 잡았다. 일반적 헌혈인 ‘전혈헌혈’보다 30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는 ‘혈장성분헌혈’(채혈 후 원심분리기 이용해 혈액 속 혈장 성분을 분리 추출)만 가능하다는 안내에 발길을 돌렸다.
김 씨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헌혈이 제한돼 아쉽다”며 “해당 지역에 친척이나 부모가 있는 사람은 헌혈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을 자지 않고 아침 일찍 놀러가서 밤늦게 돌아온다면 전혈헌혈이 가능하고, 말라리아 감염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짚었다.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박다현(가명·28) 씨도 최근 1박2일로 친구들과 인천 강화군의 한 캠핑장을 다녀온 뒤 주말에 남편과 헌혈의집에 갔던 일을 전했다. 박 씨는 “남편은 전혈헌혈을 했지만, 나는 혈장성분헌혈만 가능했다”며 “남편은 휴식시간까지 포함해 20분 만에 헌혈을 마쳤고, 나는 50분 만에 헌혈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다음 달에는 파주 캠핑장을 찾을 예정인데 다녀오고 나서 또 헌혈 방식에 제한이 걸리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만약 그렇다면 헌혈을 망설일 것 같다”고 털어놨다.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에 사는 지역 주민들 중에는 거주하는 동안 아예 헌혈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파주에 사는 안동규(28) 씨는 “파주 주민은 말라리아 때문에 헌혈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고등학생 때부터 알았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헌혈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헌혈 제한’ 기준 2007년 이후 제자리…“감염 방지 위한 조치”
최근 3년간 인구 10만명당 말라리아 환자 발생률이 평균 10명 이상인 지역은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으로 분류된다. 현재 국내 제한지역은 경기 파주시와 연천군, 인천 강화군, 강원 철원군이다.
제한지역에서 살거나 연중 6개월 이상 복무하는 사람은 2년간 전혈헌혈을 할 수 없다. 여행자는 하루 이상, 6개월 미만 숙박을 한 경우 모두 1년간 전혈헌혈이 불가하다.
만약 1월에 파주에서 묵었다가 5월에 강화에서 잠을 잤다면 마지막 숙박일을 기준으로 헌혈 방식 제한 기간이 연장된다. 이 기준은 지난 2007년, 질병관리본부에서 혈액관리위원회와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정해졌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측은 시민들의 오해나 혼란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말라리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시민들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에둘러 당부했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헌혈 제한지역 숙박 중 중간 숙주인 모기에 물린 경우 말라리아 원충이 무증상 상태로 적혈구 내에 잠복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혈구가 없는 혈장성분헌혈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초기에는 권태감과 발열 증상이 수일간 지속되며 두통이나 구토, 설사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완전한 치료를 위해 장기간 약을 복용하고 치료가 끝난 후에는 3년간 헌혈이 금지된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을 비롯해 헌혈 제한지역에 대한 설명은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의 ‘국내 말라리아 관련 헌혈 제한지역 안내문’을 통해 상시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일 이상 숙박·거주·군복무 모두 ‘헌혈 제한’ 1년으로 통합”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국내 말라리아 환자 발생 추이와 연구들을 종합했을 때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 설정 재검토나 말라리아 검사 폐지 여부에 대한 논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국내 말라리아 환자 발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 헌혈자들에 대한 말라리아 항체검사와 실제 진양성 여부를 판정하는 PCR 검사 결과 모두 음성으로 조사된 바 있다”라며 “헌혈 제한지역 설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및 말라리아 검사 폐지 여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아울러 “관련 기준 조정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정부도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혈액 부족 문제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헌혈 제한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김정숙 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장은 “헌혈 제한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거나 군복무 시 2년간 전혈헌혈을 제한하는 현 방침을 바꿔 제한지역에 1일 이상 숙박, 거주, 군복무하는 모든 경우에 대해 일제히 1년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정책과장은 “해당 방안은 혈액관리 업무 심사평가위원회 회의를 거쳤다”며 “행정 예고와 함께 각계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