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잘수망’인데 어떡해요”… 비문학 논란에 학교·학생 ‘혼란’

“‘국잘수망’인데 어떡해요”… 비문학 논란에 학교·학생 ‘혼란’

기사승인 2023-06-22 06:05:01
지난해 11월18일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 마련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분석 상황실.   사진=임형택 기자

“비문학 정말 열심히 했는데… 시간 아까워서 미치겠어요”

국어 과목에서 유리한 점수를 노리던 학생들의 한숨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험생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하루 동안 국어에만 쓰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없애기만 해 봐. 없애면 진짜 죽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지난 20일 올라온 ‘국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글에는 “아직 확실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 한마디에 수많은 수험생들 대환장 파티” 등의 댓글이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교육 교육 과정 내 수능 출제’를 지시하면서 국어 비문학 문제와 과목융합형 문제 등 ‘킬러 문항’이 줄어들 전망이다. 킬러 문항은 수능에 출제되는 초고난도 문항을 이르는 말이다. 국어 과목에서는 주로 비문학 영역에서 킬러 문항이 나왔다. 지난 3월부터 윤 대통령은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을 절반가량 줄이라고 했지만, 지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19일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이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오는 9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선 비문학 문항 비중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문학 문항이 철퇴를 맞은 건 과거 유독 어렵게 출제된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2020년도 수능 국어영역 한 문제를 소개했다. 김 원장은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를 국어 시험에서 풀어보라고 한다”며 “어안이 벙벙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질타했다. 해당 문제를 보면 ‘BIS비율’, ‘바젤 협약’, ‘위험가중자산’ 등의 국어 과목인데도 경제 전문 용어들이 나온다. 김 원장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개선하라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교육 현장에선 비문학 문항 논란을 두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내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3 A군은 “그동안 비문학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던 학생들은 억울할 것 같다”며 “남은 시간 국어 과목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국어 난도가 낮아지고, 수학 난도가 높아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누리꾼은 “‘국잘수망’인데 망한 거 맞지”라고 되묻기도 했다. 국잘수망은 국어는 잘하지만, 수학은 잘 못 하는 학생들을 칭하는 용어다. 과목 난이도 변경에 따라 불리해지는 학생이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사들도 수능을 잘 준비해온 학생들을 걱정했다. 강원도 내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 B씨는 “EBS 연계성을 믿고 차근차근 준비하던 아이들이 방향성을 잃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비문학 지문과 EBS 교재의 연계율이 높았고 학생들도 비문학보다 문학을 더 어려워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그동안 잘 준비하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문제가 출제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비문학 문항을 줄이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교사 B씨는 “배경지식의 영향력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비판적 사고력을 판단하기에 비문학은 제일 적합한 유형”라고 설명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수능 비문학 지문은 학생들의 사고력, 논리력, 독해력, 문해력을 판단하기 위해 설계된 문항”이라면서 “비문학은 지문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 지식을 묻는 문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수능은 오직 국문학과에 가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라며 “비판적 추론이나 논리적 사고 등을 판단하기에 비문학은 필요하다”고 했다.

수능 국어 비문학 출제에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학생들과 학교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비문학 독서에 대해 지문을 EBS에서만 낸다든지, 어떤 방식으로 낼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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