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호우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여야 정치권이 정쟁을 자제한 채 수해 복구에 여력을 다하고 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늦은 귀국이 ‘컨트롤타워 공백’ 사태를 빚었다며 쓴소리를 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하나노인전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희생자 빈소도 직접 찾았다. 김 대표는 “강이 범람할 것 같다는 긴급 안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처가 없었는지 잘 납득되지 않는다”며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책임자가 있다면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내 단속에도 나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해외 출장 자제령을 내렸다. 김 대표는 각급 당직자 전원에 대해 언행 주의를 요구했다. 수해현장 방문 및 자원봉사 활동과 관련해서도, 현장 공무원의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 공식 일정은 최소화했다. 매주 월요일 정례적으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중앙윤리위원회와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전체회의도 미뤘다.
일각에서는 수해 대비를 위해 이명박(MB) 정부에서 시행됐다 중단된 4대강 사업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주 기획재정부 차관, 환경부·국토부 실무자들과 지류·지천 정비 문제와 관련해 실무 당정협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공주·부여·청양을 지역구로 둔 정진석 의원은 기자들에게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을 크게 해 금강 범람이 멈췄다고 생각한다”며 “4대강 사업을 안 했으면 금강이 넘쳤다고 이구동성으로 다들 그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트 4대강 사업인 지류 지천 정비사업을 윤석열 정부에서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당장 해야 한다”며 “국토부에서 하던 수자원 관리를 문재인 정부 때 무리하게 환경부에 일원화한 것도 화를 키운 원인이다. 원상복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를 ‘수해 대응 총력 주간’으로 정하며 초당적 협력 의사를 밝혔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귀국을 늦춰 ‘컨트롤타워 공백’ 사태가 빚어졌다며, 정부의 ‘선(先) 수습 후(後) 책임’ 기조를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적 재난 수습에 적극 협력하겠다”며 “전국 시·도당과 지역위원회 차원에서 비상 체계를 유지하고, 복구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상임위 일정도 상당 부분 축소하거나 순연했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 백지화 논란 관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질의 후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할 계획이었으나, 한 차례 연기했다. 호우 피해가 속출한 만큼, 이와 무관한 정쟁 소재는 가급적 피하려는 의도다. 김은경 혁신위도 이날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지역을 순회하며 국민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었으나 관련 일정을 취소했다.
다만 정부를 향한 질타는 잊지 않았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공주시·부여군·청양군 등 충청 지역 수해 현장을 찾았다. 박 원내대표는 “국정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실의 상식적이거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국회에서 발언 경위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최근 12년 내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고 일기예보로 예견됐는데, 대통령과 여당 대표, 주무 장관 전부 자리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사실상 컨트롤타워 부재로, 국가가 없다는 걸 이재민들이 실감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 오판이 부른 참사”라며 “재난과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다. 대통령 본인이 한 말”이라고 꼬집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