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시중은행과 증권가에서 판매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이하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만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근 홍콩H지수가 하락하면서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미 투자 원금 중 40%에 해당하는 금액의 손실이 발생한 은행도 나타났다. 증권사들이 발행한 ELS의 만기도 수조원대에 달하는 만큼, 지난 2015년 홍콩H지수 폭락 사태의 악몽이 재연된 것 아니냐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용손실 이슈에 따른 내부 문책 가능성도 제기한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증시가 휘청거리면서 이를 기초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들의 손실 위험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설정한 ELS의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졌다.
ELS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 수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파생 상품이다. 보통 1~3년으로 만기를 설정하고, 3·6개월마다 조기 상환 여부를 평가한다. 이 경우 주가가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이자와 원금이 자동 상환된다. 그러나 정해진 조건에 따라 지정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은 올해 하반기 2조3000억원, 내년 13조6000억원 규모로 만기가 도래한다. 은행들은 ELS 상품을 사모·공모 방식을 통해 주가연계펀드(ELF)와 주가연계신탁(ELT) 형태로 선보였다.
증권가에서도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을 판매했다. 4개 증권사(미래에셋·NH·KB·삼성)가 발행한 관련 ELS 내년 중 2조3880억원 규모로 만기가 다가올 예정이다.
이들의 홍콩H지수 기초자산 ELS 상품은 대부분이 증시 호황기였던 지난 2020년 하반기에서 2021년경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ELS 상품 만기가 통상 3년으로 설정된 점을 고려한 결과다.
문제는 홍콩H지수가 지난해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홍콩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홍콩H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4.79p(0.65%) 내린 6854.52에 장을 마쳤다.
지난 2021년 상반기 홍콩H지수가 1만2000선에 진입했던 것을 비교해 보면, 절반가량 내려간 셈이다. 2022년 10월에는 4938.56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고점에서 상투를 잡은 투자자들의 만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하락 곡선이 이어질 시 원금 손실 우려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홍콩 증시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증시 상승에도 오르지 못하고 소외됐다. 이에 대해 하나증권은 리오프닝 이후 가계와 기업 휴유증이 예상을 상회했고, 레버리지와 소비·재고 사이클 반등이 지연된 점을 꼽았다. 아울러 정부 부양책의 강도와 정책 예상 순위가 예상을 크게 하회한 점도 작용했다.
펀더멘털의 불확실성이 상반기 미국발 악재(긴축·장기금리·제재)에 여전히 취약한 방어력을 보인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경환 하나증권 연구원은 “가계 디버리징과 부동산 불확실성은 중국에 대한 구조적인 비관론으로 역내 외국인 자금 이탈 혹은 비(非) 중화권 시장 쏠림 현상을 더욱 키웠다”며 “올해 홍콩 시총 상위 업종의 자체적인 구조조정 압력도 민영기업 중심으로 투자와 회복 기대를 제한 한다”고 분석했다.
이미 손실은 나타난 상황이다.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2021년 판매한 홍콩H지수 기초 ELF는 40억3000만원 규모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번 달 만기가 도래하는 총 규모인 103억원 중 약 40%에 달한다. 해당 상품은 총 10곳의 증권사에서 2021년 1월에 발행한 30개월(2년6개월) ELS를 편입했다. 이에 따라 차후 만기가 다가오는 상품들도 손실 위험 가능성이 대두된다.
이에 지난 2015년 홍콩H지수 폭락 사태의 악몽이 재연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 상황이다. 당시 홍콩H지수는 5월경 1만4000선을 뛰어 넘었다. 그러나 이듬해 50%가량 떨어진 7000대를 기록했다. 발행 당시 설정된 손실 기능 구간을 밑돌았다. 중국 정부의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투자 금지와 경기 침체 우려가 부각되면서 자본이 유출된 점이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홍콩H지수 부진으로 인한 연계 ELS 상품 손실 규모가 폭증할 시 내부 문책 가능성을 제기한다. 과거 홍콩H지수 폭락에 따른 ELS 운용손실 이슈로 일부 증권사들의 부서장과 해당 임원들이 물갈이됐다. 투자실패로 판가름 날 경우 담당자들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투자자 손실 가능성에 대해 모니터링 하겠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향후 대내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홍콩H지수 및 낙인 발생 관련 투자자 손실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