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예방을 위한 내년 예산이 지난해 대비 4분의 1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감소에 따른 사업 축소, 이에 따른 환자 증가, 관리 부실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내년 결핵 관리·예방에 쓰일 예산이 올해 대비 24.3% 줄어 370억원이 편성된다. 올해 결핵 관리·예방 전체 예산은 489억원이다.
24일 질병청과 의료계에 따르면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호흡기 전파 질환으로, 밀접접촉자의 약 30%가 감염되고 감염자의 약 10%는 평생에 걸쳐 시달리는 감염력이 매우 높은 질환 중 하나다.
한국의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44명,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3.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6년째 결핵 발생률 1위, 사망률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이 고가의 신약을 경제적 어려움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등을 이어왔다.
정부는 지난 3월 국가 결핵관리 전주기 지원 강화를 위한 16개 사업을 담은 ‘제3차 결핵관리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며 오는 2030년까지 결핵 퇴치 수준인 ‘결핵 발생률 10만명당 10명 이하’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 15개에 달하는 사업 예산이 줄 예정이다. 조기 진단·치료를 위해 인력과 재원 투입이 중요한 결핵 관련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올해 착수한 ‘신규 잠복결핵감염 검진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올해 본예산은 9억5000만원가량이었고 부처에서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15억7900만원이었다.
잠복결핵감염 검진은 결핵 발병 시 파급력이 큰 신생아·영유아 환자나 돌봄시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사업이다. 신생아·영유아는 결핵 발생률이 성인에 비해 40~50%로 높으며, 중증 결핵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다. 신생아의 경우 결핵 환자와 접촉 시 3개월간, 24개월 미만 영아는 8주간 결핵약을 복용해야 한다.
집단시설 역학조사 사업 예산은 증가했으나, 증가폭이 0.1%에 그쳐 사실상 모든 사업 예산이 삭감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석 의원은 “예산 감축은 수십 년간 결핵 퇴치를 위해 쏟은 노력을 헛되게 만들 것”이라며 “치료뿐만 아니라 백신 연구 개발에도 차질이 예상되고, 취약계층 검진 지원 미비로 돌봄시설의 감염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의료기관과 보건소 등에서 결핵을 관리하는 결핵관리 전담간호사와 결핵관리 전담요원 인건비도 대폭 삭감됐다. 결핵 전담간호사는 올해 341명에서 내년 250명으로 26.7% 줄고, 전담요원은 668명에서 470명으로 29.6% 감원될 것으로 보인다. 결핵 전담간호사와 전담요원은 결핵 환자의 검사부터 입원, 복용 관리를 통해 결핵 발병 가능성을 낮추고 치료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 예산 삭감 배경에 대해 정부는 국내 결핵 환자 감소 등의 상황을 반영해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예산을 대폭 줄여도 되는 수준으로 환자가 줄어든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결핵 환자를 줄이기 위해 50년간 재정을 쏟아 부은 것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 노력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본격적으로 결핵 예방·치료에 예산을 투자하고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을 진행한 게 이명박 정권 때부터였다”라며 “결핵 예산을 늘려 사업을 진행한 결과 한 해 3만4500명이던 결핵 환자가 1만5000명 수준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OECD 국가 중 한국의 결핵 환자 수는 최고 수준”이라며 “관련 예산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삭감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크다”라고 말했다.
결핵관리 전담간호사와 결핵관리 전담요원의 감원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핵은 공기를 타고 전파되기 때문에 잠복결핵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지 못하면 병이 확산하며 새로운 환자가 늘어나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 교수는 “결핵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관리하고 격려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는데, 예산 축소에 따른 인원 감축으로 운영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지금껏 해왔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지원과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정부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산을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최호용 질병청 결핵정책과장은 “일부 사업의 축소와 차질이 예상된다”면서도 “심의 과정에서 최대한 확보가 가능하도록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