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유용했으면”…‘현대판 품앗이’ 된 후기 [후기 공화국②]

“모두에게 유용했으면”…‘현대판 품앗이’ 된 후기 [후기 공화국②]

기사승인 2023-12-07 11:00:02
게티이미지뱅크

# 직장인 류하늘(가명‧29)씨는 물건을 살 때마다 후기를 쓴다. 10자 정도로 짧을 때도 있지만, 꼭 남기려 한다. 한 달에 후기를 10건 이상 쓴 적도 있다. 류씨는 “적립금이나 후기 이벤트를 위해 쓰기도 하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하려 한다”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시간 들여 후기를 작성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경험을 기록하거나 적립금을 받기 위한 목적에서, 후기를 볼 누군가를 의식하고 적는 ‘현대판 품앗이’로 변화하고 있다.

한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장소 후기엔 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글이 다수였다. 몇몇 병원 후기엔 “여러 병원을 떠돌아다녔는데 여기로 정착했다. 신뢰할 만한 의사를 찾는다면 꼭 가봐라” “유아 의자도 제공하고 너무 친절해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추천부터 “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가세요” “위생이 별로다. 괜히 가서 기분만 나빠진다”는 비추천 등 후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루 방문자 3000여명이 넘는 한 후기 전문 블로거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글을 올린다. 그는 하루 혹은 이틀에 하나씩 식당이나 카페, 여행지 등 다녀온 경험담을 올리는 식이다. 그는 “후기를 읽는 사람은 물론, 후기 대상인 업주 등 모든 사람에게 유용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한 숙소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솔직하게 적은 글에 ‘돈 날릴 뻔 했는데 덕분에 아꼈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 적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내 후기글을 보고 좋은 판단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 꾸준히 올린다”고 말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전문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후기는 ‘온라인 품앗이’처럼 여겨지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신모(33)씨는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보고 참고했으면 좋겠어서 후기를 최소 100자 이상 쓰려고 노력한다”라며 “사진도 첨부하고 구매 전 궁금했던 내용과 구매 이후 어땠는지, 실제 가보니 어땠는지 등 자세하게 쓰려 한다”고 말했다.

후기에 물건을 팔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누군가를 도우려는 바람을 담기도 하다. 송모(29‧취업준비생)씨는 “상품이 좋거나 판매자가 친절할 때, 더 정성스럽게 쓰려고 한다”라며 “최근 경기도 어려우니 번창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성한다”고 말했다. 장미윤(49)씨도 “가게들 매출이 늘어나서 폐업하지 않았으면 해서 후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최근 음식 배달 플랫폼에 남겨진 후기에 일일이 ‘좨송하다’고 댓글 남긴 노부부의 사연이 전해지자, ‘두 분 다 행복하세요’ ‘대박나세요’ ‘곧 먹으러 갈게요. 그때까지 계속 영업해주세요’ 등 후기가 달리기도 했다.

반대로 이혼‧소송 등 힘든 경험을 나누는 후기도 있다. 이혼 이후 일상을 올린 한 유튜버는 첫 영상 소개글에 “고민하시는 분들 혹은 저와 같은 일들을 겪은 분들 등등 모든 분들에게 도움 혹은 공감이 됐으면 한다”고 적었다. 희귀병을 앓는 유튜버 역시 “비슷한 병을 앓는 환우들이 내 영상을 보고 힘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 같은 후기엔 “비슷한 경험이 있어 관련 영상을 많이 보는데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어머니도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처음에 정보가 없어서 간호할 때 많이 힘들었다”며 공감하는 댓글이 다수 달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댓글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적인 글을 남긴다는 인식이 있지만, 다른 한편엔 타인을 격려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라며 “후기를 남기는 곳 역시 이렇게 변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달리기를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처럼, 물건을 사거나 자신이 원래 하려던 목적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작은 선행을 하려는 동기도 깔려 있기도 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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