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그룹(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해외부동산 투자로 1조원이 넘는 평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해외부동산 시장도 정체기를 겪고 있어 관련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어서 당국의 태도가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의 해외부동산 펀드를 비롯한 수익증권 투자와 대출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는 약 20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별 금융그룹의 투자 규모를 보면 하나금융이 6조2458억원으로 가장 많앗으며 △KB금융 5조6533억원 △신한금융 3조9990억원 △농협금융 2조3496억원 △우리금융 2조1391억원 등 순이다. 해외부동산 투자 건수는 총 782건이다.
문제는 금융그룹들의 해외부동산 관련 투자가 대부분 북미와 유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기간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공실이 증가했고, 금리상승 여파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5대 금융은 이 중 대출 채권을 제외하고 수익증권과 펀드 등 512건의 투자에 총 10조4446억원의 원금을 투입했는데 현재 이 자산들의 평가 가치는 총 9조344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체 평가 수익률은 –10.53%다. 금융그룹별 투자 원금 대비 평가 가치를 보면 △하나금융(-12.22%) △KB금융(-11.07%) △농협금융(-10.73%)의 손실률이 -10%를 넘어섰다. 신한금융은 -7.90%, 우리금융은 –4.95%로 각각 집계됐다.
금융당국에서는 해외부동산 손실이 큰 문제가 아니라며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해외 상업 부동산 위기에 대해 “(해외 부동산 투자는) 만기가 분산돼 홍콩 ELS와 성격이 다르다”라며 “투자자들 대부분이 기관투자자이고, 이들은 손실흡수능력도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규모가 상대적으로 갖고 있는 손실요인에 비해 크지 않아 손실흡수능력이 훨씬 있어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해외 ELS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다른 해외 투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단편적인 보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김주현 위원장의 발언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투자 금액 만기도 2030년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는 데다가, 전체 금융사의 올해 만기 규모는 14조1000억원으로 전체 해외부동산 대체투자의 25.4%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금융회사가 선순위 트렌치(상환우선순위)인 경우 투자 금액을 일부 또는 전액 회수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국내 금융그룹 관계자는 “금융그룹들은 해외부동산 투자를 진행할 때 보수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선순위인 경우가 많아 회수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부동산 관련 부실 채무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지난해 실적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서 충당금을 쌓은 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갖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기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된다.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예측보다 악화될 경우 금융그룹들이 준비하고 있는 대비책보다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끝난 이후에도 해외부동산 시장의 불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금융그룹들의 해외부동산 투자가 몰려있는 미국의 경우 2025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규모가 5600억 달러(약 74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관련 대출 취급 비중이 높은 중소 규모 은행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부동산 대출에 대한 리파이낸싱과 높은 공실률은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추가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박미숙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시장은 대출 연체로 경매로 넘어가거나 경매 처분되지 못해 대출기관으로 넘어간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2024년에도 미국 오피스 담보대출 연체율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반영해 개별 프로젝트별로는 단기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 경색으로 투자금 손실 위험이 크게 확대될 수 있고 때로는 투자금 전액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해외 부동산 투자 익스포저 전반에 위험 분석을 위한 정보 집중·정기적 자료 공개 종합 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