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자율 조정’에 고개 젓는 전공의들…“기망 행위”

의대 증원 ‘자율 조정’에 고개 젓는 전공의들…“기망 행위”

정부, 의대 증원 최대 1000명까지 조정 허용
의료계 냉담 “허수아비 총장들 들러리 세워”
“증원 원점 재검토가 대화·복귀 선행 조건”

기사승인 2024-04-19 19:44:53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에 한해 개별 대학이 증원 규모를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의대생, 전공의, 의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에 한해 개별 대학이 증원 규모를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 가운데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의사들은 “원점 재논의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의료공백 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한 후 브리핑에서 “증원 대상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전날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거점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이 교육부에 보낸 건의를 수용한 것이다. 국립대 총장들은 지난 18일 정부에 내년도 의대 증원분을 50~100%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뽑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증원 규모 일부 조정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2000명에서 1000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각 대학은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모집 인원을 4월 말까지 결정할 예정이다.

한 총리는 “의료계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며 “복귀를 고민하는 의대생과 전공의 여러분은 하루빨리 학교로,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여러분과 열린 마음으로 어떤 주제든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주수호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에 “기껏 생각한다는 게 허수아비 총장들 들러리 세워 몇백 명 줄이자는 거냐”라며 “‘잘못된 정책 조언에 따른 잘못된 결정이었다. 원점 재검토하겠다’라고 하는 것밖엔 출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이 증원 규모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발표를 두고 전공의들은 고개를 저었다.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대화와 병원 복귀의 선행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결정에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와 협상이 이뤄진 것도 아니고, 국립대 총장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이라서 이들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짚었다.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올 가능성은 “0%”라고 했다. 이 전문의는 “총선 끝나고 열흘째 의대 증원 관련 브리핑이 없다가 갑자기 국립대 총장들이 제안했다고 2000명 증원 계획을 뒤집었는데, 이는 오히려 전공의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의사 커뮤니티가 정부 발표 이후 분노로 들끓고 있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공의들도 정부 발표를 두고 고개를 저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직 전공의는 정부의 발표를 “여론전을 위한 기망 행위”라고 평가했다. 이 전공의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이번 발표는 단지 여론전에서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명분을 얻기 위함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책임을 대학으로 떠넘기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의대 증원 결정은 여러모로 대책 없는 정책, 총선을 위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대화와 병원 복귀의 선행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류옥씨는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무정부 상태인 상황에서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며 “의료는 시장 흥정이 아니라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전문가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간청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점 재검토가 대화의 최소 선행 조건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계속되는 정부의 분열과 횡설수설에 지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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