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앞세워 ‘습관적 탄핵’을 남발하고 있다. 연쇄적인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공세에 더해 이재명 전 대표가 연루된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대규모 탄핵까지 추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입법부의 견제 장치인 탄핵소추권을 남용하면서 행정·사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민주당은 박상용·엄희준·강백신·김영철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당론으로 채택했다. 모두 이재명 전 대표나 민주당 연루 의혹이 있는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다. 강 차장검사와 엄 지청장은 대장동·백현동 의혹 수사를 맡았다. 박 부부장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와 관련해 지난해 9월 이 전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김 차장검사는 대검 반부패과장 재직 당시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 등 수사를 이끌었다.
여권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에서도 ‘방탄 탄핵’이라는 반발이 잇따랐다.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의혹 등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송경호 부산고검장은 지난 2일 오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헌법재판을 통해 민주당의 검사탄핵이 위헌·위법·사법방해·보복·방탄 탄핵에 명백히 해당됨을 국민들에게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이 전 대표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댓글에서 “우리나라의 법치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 몰랐다. 입법부의 ‘탄핵소추권 남용’을 반드시 바로 잡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검사 3명(안동완·이정섭·손준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국무위원과 현직 판사,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모두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빈도 수에 비해 무게감은 떨어진다.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다.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은 헌재에서 본안 판단을 받지 못한 채 각하됐고, 이 장관과 안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기각됐다. 이 검사, 손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은 계류 중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오로지 업무 지연만을 위한 탄핵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라며 “탄핵은 법치주의가 위협받을 때 발동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당리당략이나 특정 개인을 위해 이용하는 ‘만능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처럼 탄핵안이 남발되면 야당이 집권했을 때도 역풍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통위원장도 ‘단명’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2인 체제로 방통위원회를 운영해온 김 전 위원장은 본인의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보고가 이뤄지기 전 자진사퇴했다. 수장 공백 사태로 인한 업무 마비를 방지하고, 방통위 의결이 가능한 최소 숫자인 2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에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방통위원장 탄핵을 밀어붙였다. 당시 취임 100일도 되지 않은 이동관 전 위원장은 탄핵을 피하기 위해 직을 내려놨다. 이로 인해 방통위 업무가 마비돼 연내에 끝마쳐야 했던 141개 방송국 재허가가 불발됐다.
문제는 차기 위원장도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완료한 후 탄핵되거나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4일 후임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지명하자, 민주당은 “방송장악에 부역한 인물”이라며 임명 시 탄핵소추를 불사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6개월 이상 위원장 직무가 정지된다. 사퇴도 불가능하다. 최근 절차를 밟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방통위 업무도 장기간 멈출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행보는 오는 8월12일 임기 만료되는 친야 성향의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동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그만두더라도 제2, 제3의 이동관이 나온다”고 내다봤다. 이 전 위원장의 예언대로 차기 리더십과 방통위 업무 공백은 지속될 전망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총선에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만큼 자신들을 ‘절대 선’으로 보고 있다”며 “한마디로 ‘우리 눈 밖에 나는 이들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의 공포 정치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