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개원의들의 시간”…병의원 전공의 취업 딜레마

“이젠 개원의들의 시간”…병의원 전공의 취업 딜레마

기사승인 2024-07-23 15:11:48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옆으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22일부터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이 시작된 가운데 전문의 수련 과정을 내려놓고 일반의로서 동네 병·의원에 취업하려는 미복귀 전공의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원의들은 병원 운영이 팍팍한 상황에서 사직 전공의들을 품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전국 주요 수련병원들은 22일부터 이달 말까지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진행한다. 각 병원은 전공의 지원을 취합한 뒤 다음 달부터 필기·실기시험과 면접 등 채용 절차에 들어간다. 현행 수련지침상 전공의들은 수련을 받다가 도중에 포기하면 1년 이내 같은 동일 진료과목·연차로 복귀할 수 없지만, 정부가 9월에 돌아오는 전공의들에 한해 수련 특례를 적용한 상태다.

앞서 전국 수련병원 151곳 중 110곳은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통해 7707명(인턴 2557명·레지던트 5150명)을 뽑겠다고 정부에 신청했다. 빅5 병원은 2883명을 선발한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이 1019명, 서울대병원 191명, 세브란스병원 729명, 서울아산병원 423명, 삼성서울병원 521명 등이다.

전공의들이 이번 모집에도 지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빨라도 내년 6월 이후에나 수련을 재개할 수 있지만 복귀 전망은 밝지 않다. 의정 갈등을 거듭하는 사이 전공의와 수련병원 간 앙금과 불신이 커졌다. 전공의 단체는 수련병원장들을 향해 “권력에 굴복했다”고 비판하며 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공의를 병원의 소모품으로 치부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병원장들의 행태가 개탄스럽다”며 “대전협 비대위는 퇴직금 지급 지연, 타 기관 취업 방해 등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침해한 병원장에 대해 형사 고발, 민사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9월에도 복귀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일반의(GP)로 동네 병·의원에 취업하거나 자신의 병원을 개원할 수 있다. 더불어 공중보건의사·군의무사관 입대, 해외 진출 등이 꼽힌다. 사직 전공의 상당수는 동네 병·의원 취업으로 진로를 틀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내과 사직 전공의 A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반의로 일하려는 전공의가 폭증하면서 피부미용 의원 페이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지만 지원 문의는 빗발친다고 한다”며 “주변에 구직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 전공의가 많다. 선배 의사들이 나서서 전공의를 우선 고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일선 동네 병·의원 원장들은 고민이 깊어 보인다. 선배 의사로서 후배 의사들을 품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병원 직원들의 생계와 경영난을 책임져야 하는 원장으로서의 역할이 상충하며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개원의들은 대체로 전공의를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전한다.

서울 은평구 소재 정신건강의학과 B원장은 “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원의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과마다 다르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원래 일반의 채용이 거의 없으며, 일반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채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서울 중랑구 소재 신경과 C원장은 “개원가는 사직 전공의들이 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추가 인력을 뽑을 필요가 있었던 병·의원은 진즉에 뽑았을 것”이라며 “피부미용을 주로 하는 병원들은 일부 채용할 수 있겠지만, 비싼 값을 주고 이들을 채용할 메리트가 없을뿐더러 병원 경영 등을 따져봤을 때 실익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짚었다.

경기 고양시 소재 이비인후과 D원장 역시 사직 전공의를 채용하는 병·의원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D원장은 “단순 업무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사직 전공의가 전문적인 진료를 환자에게 제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원장 입장에서 전공의와 손발을 맞춰 같이 일하기 위해선 교육도 해야 하고 공간도 필요한데 이 역시 여의치 않다”고 진단했다.

시·도의사회들은 사직 전공의가 개원가로 몰려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는 “전공의 구인구직에 대한 의사회의 입장은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수요공급 면에서 일자리가 어느 정도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더 명확해지겠지만 초유의 사태라서 당분간은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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