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시장 확대…“의료민영화 가속” vs “국민건강 보장”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시장 확대…“의료민영화 가속” vs “국민건강 보장”

기사승인 2024-08-20 06:00:08
게티이미지뱅크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시장 개방 확대를 두고 정부와 시민단체의 시각이 엇갈린다. 의료계와 민간보험사들도 논쟁에 가세하며 이해관계자 간 의견 대립은 극심해질 전망이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익적·과학적 연구와 자기 주도 건강관리를 위한 건강보험 데이터 개방·활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보면 민간 대상 빅데이터 제공 확대, 저위험 가명정보 외부 반출 허용,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통한 의료데이터 활용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국내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적용받고 있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축적된 데이터량은 민·관을 통틀어 최대 규모로 꼽힌다. 데이터는 개인의 병력, 진료, 수술, 의약품 처방은 물론 소득과 재산, 가족관계 등 신상 정보를 망라한다.

민간보험사들은 최근 3년 동안 보험 상품 연구·개발과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 등을 목적으로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을 요구해왔다. 지금까지 국민 건강 관련 데이터는 공익적·학술적 목적으로 연구자들이 신청하면 익명화된 형태로 제한적으로 연구에 활용이 가능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 기조와 맞물려 규제 개선과 활용 범위 확대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앞서 지난 8일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 정보공개 절차 합리화 검토’를 안건으로 보험개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시민단체들은 진료·건강 정보뿐 아니라 소득·재산 정보까지 담겨있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제공 확대는 곧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실손보험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민간보험사가 건강보험 데이터를 손에 넣는 순간 보험 신규 가입과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고,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19일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 저지 공동행동(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아직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장치가 미흡하다”며 건강보험 빅데이터가 민간보험사에 제공될 경우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 사무총장은 “실손보험과 비급여진료의 만남으로 국민들의 가계 의료비는 증가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전 국민의 건강 정보를 담고 있는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이런 행태는 건강보험제도의 공공성과 전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이 공보험을 위축시키고,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민간보험사들이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보험 상품을 설계하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성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간보험사는 건강보험 데이터를 이용해 특정 집단을 겨냥한 마케팅을 하거나 보험료 지급 거부, 가입 차등화 등으로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 저지 공동행동’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국민의 동의 없는 데이터 제공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다는 주장도 폈다. 국민 대다수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에 반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동행동이 7월25일부터 8월2일까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015명 중 75%는 민간보험사에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반대 이유 중엔 ‘국민 개인 정보를 민간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49.3%로 가장 많았다. 31.4%는 ‘개인의 의료 정보, 소득 및 재산 정보 등 민감한 정보가 이용될 위험이 높아서’라고 답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정보의 활용도 측면에서 건보공단의 데이터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데이터 간 차이가 분명하다며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보험사에 대책 없이 건강보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평원은 지난 2014년부터 민간보험사의 요청에 따라 데이터를 제공했지만, 2017년 국정감사에서 보험사의 이윤만 극대화했다는 질타를 받고 제공을 중단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되면서 2021년부터 다시 보험사들의 데이터 제공 요청을 승인하고 있다.

김철중 건보노조 위원장은 “정부는 보건의료 혁신과 국제협력 강화라는 정책 기조 하에 국민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는커녕 민간보험사에 팔아넘기겠다고 건보공단을 상대로 협박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빅데이터는 공적 재원으로 마련된 의료체계 인프라에 기반해 국민과 환자, 의료인, 공공기관이 만들고 관리해온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다”라고 강조했다.

환자들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넘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짚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그동안 민간보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들의 목숨과 생명을 갖고 흥정하고 심지어 항암 치료비 지급도 거절했다”며 “보험료 인상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청구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명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정부는 건강보험 빅데이터가 신약 개발 등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돼 국민 건강·안전 보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쿠키뉴스의 서면질의에 “공단은 민간보험사 자료 제공에 대한 이해관계자 간 의견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보주체 침해 우려 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건강보험 빅데이터 제공을 통해 다수의 보건의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의견 수렴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국민적 신뢰를 얻어 안전하게 데이터를 개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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