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방산 뜨거운 감자 ‘지재권’ 문제…“산업 발전 성장통” 시각도

원전·방산 뜨거운 감자 ‘지재권’ 문제…“산업 발전 성장통” 시각도

- 체코 원전 수주 발목, 피하기 힘든 원천기술의 굴레
- 한화에어로-항우연 IP 소유권 갈등…“민·관 사업 형태 변화”
- 유망 산업 발전 과정 ‘성장통’…“정부·기관의 제도 개선 必”

기사승인 2024-09-12 06:00:08
체코 두코바니 지역 소재 원자력발전소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원전·방산업계 내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지식재산권 갈등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좀처럼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를 주도로 정부는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 체코 원전 사업과 관련한 지식재산권(지재권) 갈등을 풀기 위해 합의를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일 체코 원전 수주 관련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이 미국으로 넘어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전력공사(CEZ)가 한국수력원자력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약 24조원)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을 두고 한수원이 지재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1960~1970년대 글로벌 원전 기술을 주도한 웨스팅하우스는 1978년 우리나라 첫 상업용 원전 고리1호기 건설 당시에도 기술을 전수한 바 있다. 국내에 건설한 28기 원전 가운데 18기에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 이용된 것은 사실이나, 2017년 이후 우리나라는 한국형 원전의 핵심 기술 국산화를 마무리하면서 독자 개발에 성공한 상태다. 

또, 이미 1997년 한국형 원전을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 수출하는 데 제약이 없도록 기술사용협정을 체결했으며, 2007년 이후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자유롭게 수출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만들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게 우리 측 입장이다.

지재권은 무형자산이자 민간 차원(소송 등)의 문제로, 원천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의 이 같은 항의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소송을 걸면 걸리는 형태’다. 앞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에도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사례와 똑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 입장에서 이를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원전 수출 절차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 48개국이 포함된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지침에 따르면, 무분별한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원전 기술을 제3국에 이전할 때는 그 기술을 가진 해당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 기술이 미국에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하기에 미국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해석이다. 웨스팅하우스뿐만 아니라 미국 에너지부와 연관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우리 정부는 대립보다는 합의 측면의 대화를 진행 중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웨스팅하우스와 소송보다 ‘윈윈’하는 방식으로 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미 정부 차원에서도 양국 산업협력 모델을 만들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구체적인 협력 모델은 기업들이 나중에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원전 수출을 확대하는 데 있어 미국, 즉 웨스팅하우스는 현실적으로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이자 구조를 갖고 있다”며 “지재권 문제 중에서도 특수한 케이스인 만큼, 이번 사례를 토대로 원천기술 인정 범위(비용)를 양국 및 기관이 확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3차 발사가 이뤄지고 있다. 우주항공업계는 누리호를 바탕으로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나서는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항공업계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약 9500억원 규모 차세대 발사체 사업 관련 IP(지식재산권) 소유권 인정 범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술의 IP가 국책연구기관인 정부의 소유인지, 민간기업으로서 공동 개발에 참여한 한화에어로가 공동 소유할 수 있는지를 놓고 명확한 권리의 경계가 없어 입장차가 발생한 것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르면, 주관 기관이 IP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한화에어로는 공동 개발에 참여하는 개발 주체 입장으로서 IP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항우연은 한화에어로가 체계 종합 업체로서 제작 용역을 수행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한화에어로는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으나, 조정위는 이번 계약이 특수 조건에서 분쟁을 ‘법원의 판결 또는 중재법에 의한 중재’로 해결한다고 명시한 것을 토대로 각하했다. 

소 각하 이후에도 별다른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자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지난 5일 “양측의 합의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면서 “제도적 개선 사항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런 문제가 또 다른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다른 민간기업도 기술 이전을 받아야 한다”면서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개선 과정까지 같이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지재권의 민간 공동 소유 인정 시 기술 독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항우연의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뉴스페이스’ 시대로 도약하는 가운데 우주항공사업의 정부-민간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민간기업이 하청 역할에 머물렀다면, 향후 파트너를 넘어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이란 관점에서다.

실제로 민간기업이 우주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스페이스X는 팰컨9을 개발하는 데 약 6000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는데, NASA가 동급 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면 이보다 10배 이상의 비용이 들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다만 IP 소유권 인정 여부에 따라 업계 내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명확한 권리관계 수립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성장해왔고, 이 과정에서 민·관 사업 형태의 흐름이 현재 변화하고 있어 향후 다양한 형태로 분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산업 발전을 위해 민간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대상이 국가전략기술이며 자칫 중대한 국가 사업의 지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참여 형태, 역할, 계약 관계 등 확실한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