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 어려워요” 고려인 어린이들의 첫 추석맞이

“큰절 어려워요” 고려인 어린이들의 첫 추석맞이

- 영구 귀국한 고려인 자녀들, 한국에서 추석 체험
- 제천 향교서 명절 예절교육 및 송편 빚기, 전통놀이 체험

기사승인 2024-09-17 06:00:06
"큰절 배우기" 
추석명절을 앞둔 11일 오후 충북 제천시에 위치한 제천향교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영구 귀국한 고려인 동포 자녀 15명이 우리 고유의 예절교육과 전통놀이, 송편 만들기 체험을 하고 전통복장을 갖춘 강사들과 함께 향교 곳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제천시, 고려인 적극 유입 추진, 현 335명 둥지 틀어
- 고려인, 축소되어가는 도시에 활력 되기를 희망
- 고려인들 대부분 한국생활에 적응
- 인구급감,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 갖춰나가야 
"어렵지만 열심히 배울래요"
제천향교 풍화루에서 우리 고유의 풍습을 익히고 있는 고려인 어린이들이 강사들이 큰절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하고 있다.

“남자 어린이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고 배꼽위에 살며시 올려놓습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제천향교 풍화루 누각이 떠들썩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 14명이 전통예절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서투른 손놀림과 어색한 모습을 연출한다. 추석 명절이 코 앞인데 이날 제천 지방 낮 최고 기온은 32도를 가리켰다. 연신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는 이연복 예절강사는 더위를 쫒아낼 듯 힘찬 소리로 어린이들의 동작을 고쳐준다.
"어른들께는 이렇게 절하는 거란다"
제천향교 이연복 강사는 “제천시로 이주해온지 얼마되지않아 아직까지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민족으로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특히 오늘 더운 날씨 속에서도 진지하게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해 배우려는 어린이들과 부모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마루 바닥에 엎드려 어설프게 큰절을 하는 어린이들... 그런데 어린이들의 대화와 얼굴 표정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다름아닌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살던 고려인 동포의 자녀들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구슬땀이 맺혀도 어린이들의 표정과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한국으로 와서 배운 배꼽인사도 적응이 덜 되었는데 한복을 입고 큰절을 배운다. 몸 속에 한국인 DNA가 있는지 바로바로 따라한다. 동작도 제법 세련되게 큰절을 한다.
굴조다(10‧용두초 3학년) 어린이는 “큰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찌었다”면서 “추석이 뭔지 잘 몰랐는데 예쁜 한복을 입고 ‘절하는 방법’을 배우니 신난다”라고 말했다.
"엄마들도 함께 배워요"
가을 답지않게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고려인 아이들과 함께온 부모가 제천 향교 소속 전문강사의 지도아래 송편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큰절과 반절(작은절)을 익힌 후 14명의 어린이들은 송편 빚기에 도전했다. 
“송편은 우리 고유 명절인 추석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한 뒤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음식이에요”
풍화루 누각 2층 마루에 둘러앉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설명에 귀를 쫑곳 에우고 반죽된 흰쌀가루를 작은 손으로 동그랗게 만든 후 조물조물 반죽을 넓혀 소를 넣고 조심스럽게 오므려 송편을 빚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 5살 동생들은 송편 만들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기 바쁘다. 
"반죽이 적당히 펼쳐졌으면 그 안에 콩이나 깨를 넣으면 된단다" 
제천향교 소속 강사가 어린이에게 송편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제천시에 영구귀국을 추진 중인 고려인들의 대다수는 증조부나 고조부가 연해주를 거쳐 중앙아시아에 정착해 살아왔다. 대부분 고려인 교포 4, 5세로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한국어를 잘하지는 못한다. 제천시 관계자는 "고려인 어린이들의 언어습득력이 어른보다 훨씬 빨라 어렵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3~4학년 어린이들은 동생들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살피면서도 송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기본적인 형태의 송편을 몇 개씩 만들어 본 후에는 동물 모양 등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송편도 만들어보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어느 정도 송편 만들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와 우리 전통놀이인 투호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겼다. 무더운 날씨에 너도나도 한복을 벗어놓고 전통놀이를 즐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기차기도 배워보고 투호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향교마당에서의 아이들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풍화루 넘어 제천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나도 어렸을 때는 제기 좀 찼단다"
예절 교육을 마친 어린이들이 향교 앞마당에서 강사들의 지도아래 전통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정길영 제천시 미래정책과장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이 우리의 전통을 배우는 모습을 보니 매우 뜻 깊다”면서 “제천시의 고려인 동포 이주정착 지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고려인 동포들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고려인 동포 자녀 추석 명절 예절 교육 행사에 참여한 리 레기나 부모는 “제천시에 이주해 온 후 많은 지원을 시에서 받고 있다”면서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고 특히 오늘 우리 자녀들이 한국의 예절 교육을 익히고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시간을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향교 둘러보기'
절하기, 송편만들기 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이 향교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제천향교(堤川鄕校)는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고려 시대의 향교로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전통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향교의 시설들을 돌아보며 향교의 역할과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지어진 제천향교는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선조 23년(15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그 뒤 순종 융희 1년(1907)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2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고 그 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얘들아, 조심 조심"
제천시는 시에 정착하는 고려인들이 한 곳에 집단 거주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시내 곳곳에 흩어져 제천시민들과 어울려 살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땟골마을, 광주 광산구 월곡동, 인천 연수구 연수동함박마을, 청주시, 충주시 등에 모여 살고 있다.

제천향교 김명선 강사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분들을 만나서 반가왔다. 아이들을 위한 예절 교육과 송편 만들기, 전통 놀이 체험을 통해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절은 두손을 모으고 중심을 잘 잡아서 얌전하게 해야한다"
강사들이 큰절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따라하고 있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서 살아가는 한민족 동포를 통틀어 일컫는다. 현재 국내에 사는 고려인은 8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대부분 고려인 3∼4세대다. 국내 거주 고려인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이 약 70∼80%를 차지한다.

한편, 제천시는 지역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국내외 고려인 동포를 대상으로 '제천시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펼쳐 올해 7월말 기준 재외동포 129세대 335명이 제천시에 둥지를 틀었다. 제천시는 단기 체류시설 제공을 비롯해 국어·한국문화 교육, 취업·보육·의료 지원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제천시는 한국어 교육센터 건립해 제천시를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 재외동포 이주의 국가 허브 지역으로 만들 계획도 추진 중이다. 

김창규 제천시장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이 우리 문화를 익히고 함께 추석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동포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려인의 큰 명절은 '한식'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 명절처럼 고려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은 한식이다. 양력 4월 5일에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정성스레 장만한 음식을 조상에게 대접하고 함께 나눠 먹는다.

제천시가 선도적으로 고려인들을 이주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재외동포나 외국인들이 잠시 일손만 채우고 돌아가기보다는 인구위기 현실에서 이들이 우리나라에 정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을 정비하고 갖춰나가야 할 시점이다.

제천시는 지난해 10월 재외동포지원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7월 말 기준 129세대 335명의 동포가 이주를 마쳤다.

제천시는 지난해 10월 재외동포지원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7월 말 기준 129세대 335명의 동포가 이주를 마쳤다.

고려인 어린이들이 명륜당 앞 마당에서 제기차기와 투호놀이를 즐기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배움의 공간을 이루며, 그 앞에 학생들 거처인 동재·서재가 있다.

"기념 촬영은 필수"
제천시는 재외동포지원센터를 통해 고려인 재외동포 이주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제천시는 향후 천여명의 고려인 이주를 계획하는 등 재외동포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인구소멸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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