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는 지평선을 2/3 선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왼편의 낮게 깔린 구름은 밀밭의 광대함을 말해 준다. 짙은 파란색 하늘과 흰색 구름과의 조합은 농도를 다르게 하여 공간의 층위를 주었다. 밀밭을 포함하는 대지에는 노란색과 초록 물결을 이루는 붓 터치의 방향과 표현의 차이로 밭둑의 경계가 표시되는 파노라마 풍경화이다.

빈센트의 <천둥 구름 아래의 밀밭>의 부분을 찍어온 사진을 바라보다 로스코의 색면 추상을 연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파란색의 심연: 로스코와 반 고흐의 색채 대화
로스코는 추상 미술가 그룹 ‘뉴욕파’의 주요 멤버였고, 잭슨 폴록과 함께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라트비아에서 마르쿠스 로스코비츠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1913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로스코는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예일대에 재학했다. 그는 학부를 마치기 전에 변호사나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본래 계획을 포기하고 뉴욕 미술학생연맹에서 수업을 들었다.
초기 작품은 표현력이 풍부한 초상화, 도시 풍경이었던 반면, 그는 경력을 쌓으면서 매우 독특한 시각 언어를 개발했다. 흑백 색상 필드를 중첩한 것이 특징인 그의 대형 포맷 작품은 정밀하게 계산된 빛과 공간의 효과를 목표로 하며, 이미지와 관람자 사이에 명상적인 상호 작용을 목표로 한다.
러시아 출신의 유대계 미국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로스코의 이 작품을 보면 화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심연을 알 수 없는 파란색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로스코는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에 있습니다. 색채 관계에만 감동을 받는 다면 요점을 놓치게 됩니다.”라 했다. 반 고흐의 〈천둥 구름 아래의 밀밭〉에서 형태를 제외하고 색조만 본다면 바로 로스코의 〈무제〉와 다르지 않다.
추상의 감정: 로스코, 반 고흐, 그리고 색채의 유산
추상 미술(抽象 美術, abstract art)이란 대상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점, 선, 면, 색과 같은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표현한 미술이다. 형태나 색은 각각의 고유한 의미와 느낌을 가지고 있어 형과 색의 어울림만으로도 그리는 이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로스코는 추상표현주의로 분류되는데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은 그린다는 화가의 행위 그 자체를 중요시하고 그리는 행위의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심리상태와 형태 없이 감정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나는 추상표현주의자가 아니다. 색과 형태 같은 관계에 관심이 없다. 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로스코의 작품을 반 고흐와 연결하는 고리에는 앙리 마티스와 그의 스승인 막스 웨버(Max Weber, 1881~1961)가 있다.
마티스는 1901년 파리 제르맹 젠트에서 열린 반 고흐 회고전을 보고 그의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었다. 1902년 툴루즈-로트레크전, 1904년 반 고흐와 쇠라전 등 1901~06년 사이에 고갱, 세잔의 회고전도 있었다. 실재를 재현하던 색채를 화가가 느낀 감정대로 자유롭게 해방시켜 놓은 아방가르드라고 취급되던 화가들에게서 물감통을 캔버스에 던져 놓은 “야수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색채의 계보: 웨버, 에이버리, 그리고 로스코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로스코의 색면 추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제목을 보고 난 뒤 마티스가 밤에 호텔 이층에서 ‘콜리우르 쪽으로의 창문’을 그린 작품이란 걸 알게 되었다. 미국 화가인 막스 웨버(Max Weber, 1881~1961)와 로스코는10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 유대계라는 동질감을 갖고 서로 통하는 점이 있었다. 미국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웨버는1905년 파리에서 줄리앙 아카데미를 다니며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등 유명한 야수파 화가들과 만나고 마티스에게 그림을 배웠다.
1908년 미국으로 돌아온 웨버는 내적 영감을 형과 색의 구성으로 옮기려 했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주의 양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웨버는 미술 작품 속에 신성한 영혼이 깃들어져 있으며 수업에서 항상 예술이 갖는 정서적인 힘과 신성한 영혼을 강조했다. 웨버에게 미술은 ‘예언과 드러냄’이었다. 이러한 낭만적이며 이상주의 사고는 로스코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로스코는1925년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웨버의 회화 수업을 들었다. 로스코는 초기에 웨버의 영향으로 표현주의 양식으로 채색하기 전에 언제나 밑그림을 그리곤 했다.
로스코는1932년 ‘미국의 앙리 마티스’라 불리는18세 위인 화가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를 만나게 된다. 작품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서도 에이버리에게 받은 단순한 형태와 표현적인 성격, 색을 얇게 바르는 기법 등의 영향이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로스코에게 앙리 마티스와 연결되는 반 고흐의 색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색면 속으로: 로스코와 반 고흐, 그리고 경계 없는 감성

이 작품을 제이콥 발테슈바의 책 《마크 로스코》에서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마티스의 <콜리우르 쪽으로의 창문〉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로스코는 영감을 얻기 위해 몇 달간 매일 모마(MoMA,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티스의 〈붉은 방〉을 관찰했다. 그는 훗날 이 작품이 자신의 추상화의 원천이 되었고, “색채와 하나가 되어 물든다.”라고 했다. 〈마티스에 대한 경의〉는 2005년 11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240만 달러(당시 약235억 원)으로 2차대전 이후 현대 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다.
로스코는 3m가 넘는 그림 안에 있게 되면 색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하며 경계가 사라지고 불가해한 것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되므로 자신의 그림을45cm에서 가까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라 했다. 리움에서 현대 미술소장전이 열리기에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러 갔다. 몇 년 전에 보았던 대작을 기대했는데, 이번 출품작은 크기가 작아 기대했던 감흥을 느끼긴 어려웠다.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서 그림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로스코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인간의 감정과 전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에서 위로를 받고 평정심을 회복한다.
1968년 런던 화이트 채플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는 대중과 비평가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영국 미술비평가인 데이비드 실베스터는10월20일 자 〈뉴 스테이츠맨〉에서 “색채를 통해 인간의 격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반 고흐의 시도를 완성했다.”라 평가했다. 로스코는 스승 웨버를 통해 마티스와 연결되고 마침내 반 고흐로 귀결되었다.

이로써 2020년 퐁피두 센터에서 만난 마티스의 <콜리우르 쪽으로의 창문>에서 출발하여, 반 고흐 미술관의 <천둥 구름 아래의 밀밭>과 모마의 마티스의 〈붉은 방〉과 로스코의 대작으로5년 여에 걸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