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인력난으로 비상장비와 보안을 확인하지 못하고 이륙해 안전 보안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 글들을 올리면서 항공사 내 인력난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여행 길이 다시 열리면서 항공업계에 숨이 트일 것이라는 시선과 상반되는 내용이다.지난 6일 서울 용산구에서 민주노총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지부장과 객실조직부장, 전 대의원을 만나 대한항공 내 인력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서 항공업계 인력난이 이슈가 된 건가.
이현진 전 대의원 : “그렇지 않다. 코로나 이전부터 꾸준히 인력난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현장 투입 인력이 줄어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졌다고 보면 된다. 단적인 예로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식음료 서비스가 중단됐던 시기가 있다. 이때 사측에서 업무에 투입되는 인원수를 줄였다. 물적 서비스 중 몇 가지가 줄였지만, 방역 관련 업무는 늘어났다. 체감상 전혀 일은 줄지 않았는데, 사람이 줄었다. 서비스가 간소화됐으니 승무원을 줄여도 된다는 논리다.”
Q. 코로나가 엔데믹화 되면서 기내 서비스를 확대하는 추세인데 줄어든 인원으로 감당하기 어렵지 않은가.
송민섭 지부장 :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코로나 때 일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인원이 줄어들어 현장에서 힘들다는 얘기를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된 일들을 다 해냈다. 일을 해낸 것이 곧 인원을 줄여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셈이 됐다. 그래서인지 해외여행이 회복되면서 서비스는 늘었지만, 승무원 인력은 늘지 않았다.”
Q. 대한항공 항공기 기종별 탑승 인원 변화를 보면 와 닿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린다.
정지은 객실조직부장 : “코로나 이전인 2018에는 330 비행기에 일반석 기준으로, 최대 탑승 인원 252명일 때 승무원 7명이 담당했다. 2020년부터는 252명을 6명의 승무원이 담당한다. 사람 한 명이 줄었다고 생각하면 체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승무원 2명이 50명의 승객을 담당하고 6명이 151명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노선이 확대되면 지금보다 업무 강도가 더욱 높아질 텐데...”
이현진 전 대의원 : “이런 상황 관련해서 이슈화가 되면서 국토부에서 승무원 인력을 재정비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된 일부 편수에 한해서 승무원 인력을 예전처럼 늘렸는데 늘어난 인원은 신입 직원들이 현장에서 업무를 배우는 OJT(On The Job Training) 명목으로 투입했다. OJT로 인력을 넣으면 다음 업무에서 빼기가 쉽다. 그래서 4월 1일부로 항공기 A330은 이전처럼 복원이 되긴 했다. A330은 ‘페이스 아웃’이라고 해서 사용을 줄이는 기종이다.”
Q. 항공업계에서 신입 경력 채용을 통해서 인력 채용을 확대한다는 발표가 연이어 나온다. 조만간 업무강도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송민섭 지부장 : “우리가 말하는 ‘인력난’은 사람을 더 채용해달라는 인력난이 아니다. 항공기 편 당 탑승인원을 늘려달라는 의미에서 외치는 인력난이다. 비행기 편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텐데 항공기에 탑승인원을 늘리겠다는 얘기는 아직 없는 상태다.”
이현진 전 대의원 : “2018년에 제 휴가가 100개가 쌓여 있었다. 당시에는 휴가 신청을 올려도 반려됐다. 이때는 사람을 더 채용해야 하는 인력난이었다. 코로나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유휴 인력이 있음에도 최소 인원으로만 업무를 감당하게 하는 데서 오는 인력난이다. 코로나 이전처럼 정상 비행이 시작되면 2018년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늘 우리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송민섭 지부장 :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원이 현장에 전부 투입됐을 때도 늘려주지 않던 인력인데, 코로나 때 줄어든 인력으로 업무를 다 해냈으니 정상 비행이 된다고 해도 사람을 더 늘려줄까 싶다.”
Q. 100개의 연차가 쌓이면 때마다 정산이 되는 시스템인가.
송민섭 지부장 : “지난해까지는 정년퇴직할 때 밀린 휴가를 정산받았다. 노동자가 휴가를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하고, 돈으로 정산 받고 싶으면 정산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사측은 ‘퇴직 때 주는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직원들끼리 뜻을 모아 노동부에 신고하고나서야 지난해 3월 신청자에 한해 밀린 휴가비를 지급받았다.”
“근로기준법상 1년간 80% 이상 출근한 노동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한다. 근속기간에 따라 유급휴가 일수는 늘어나며 그 한도는 25일이다. 100일의 휴가가 쌓였다는 건 4년 치 휴가가 쌓였던 셈이다. 다만, 앞으로도 밀린 휴가비를 정산하겠다는 말은 없는 상태다.”
이현진 전 대의원 : “휴가를 쓰지 못하는 환경이 곧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99년 입사 이후에 지금까지 한 번도 코로나 이전에 집안 경조사에 다닌 적이 없다. 비행 스케줄을 보고 일정을 조율해도 항공기 예약률에 따라 전날 무작위로 근무 일정이 바뀐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으니 일정 변동이 생기면 거의 모든 승무원이 일정이 바뀌는 것이다. 남는 인력이 있으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되는데, 인력이 얼마 없으니 어딘가에서 사람을 빼서 채우는 식이다. 한 달 동안 근무표가 10번 바뀐 적도 있었다.”
Q. 근로기준법과 부합하지 않는 업무 환경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이현진 전 대의원 : “우리는 노동법, 항공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단적인 예로 노동법에는 근무 중 휴게시간에 대해 나와 있는데, 비행 후 휴게시간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항공법에도 없다. 승무원들이 받는 매뉴얼 중 객실 운영 교범(COM·Cabin Operation Manual)이 있다. COM은 객실 승무원이 기내에서 해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승무원의 바이블인데, 여기에 노동법과 항공법은 별개고, 승무원들은 항공법에 적용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항공기에 투입되는 우리도 노동자이니 노동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서 승무원들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정지은 객실조직부장 : “연간 승무원들은 피폭량을 6mSv를 넘지 않게 되어있다. 비행하면서 누가 몇 월 며칠에 어디서 어디까지 갔는지 기록을 통해서 계산한다. 저는 5mSv로 추산된다. 90년대부터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북극항로를 지날 일이 많아졌고, 그 때부터 10년 넘게 일한 승무원 중에서 유방암, 백혈병에 걸렸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온다. 2021년 6월 처음으로 산재 인정이 됐고, 그 이후에 1년여 동안 6명이 산재로 인정됐다. 암 환자 관련돼서 ‘암도 산재입니다’ 라는 활동을 우리가 시작했다.”
Q. 아시아나와 합병을 앞두고 있다. 합병 과정에서 인위적인 구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했으니 앞으로 인력이 더 늘어날 거라 기대하나.
송민섭 지부장 :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나가세요’ 하고 내보내는 게 인위적이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나가게 하면 그건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일례로, 부산에 승객 운송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이 부서가 해외 항공사를 맡아 운영하다가 에어코리아라는 자회사로 넘어간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해외 항공사를 담당하던 운송 부서 직원들의 자리가 남게 되는데, 이 인원을 인천으로 발령 낼 거라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부산에서 채용해서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인천으로 발령받을까봐 벌써부터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근로조건 변경을 통해서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게 된다면 이건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이유다.”
“대한항공기 세부 공항착륙 중 활주로 이탈했을 때 162명 승객을 부족한 승무원 인력으로 정원 탈출시킨 적이 있다. 당시 근무한 승무원들이 부족한 인력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졌지만, 이후로 우린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직원이 된 것이다.”
Q. 양 사 합병 과정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런가.
송민섭 지부장 : “대한항공이 아시아나가 갖고 있던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의 슬롯 7개를 영국 국적의 버진애틀랜틱 항공사에 넘겼고, 중국 노선 슬롯 일부도 반납했다.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했던 알짜배기 장거리 노선 대부분을 반납한 것이다. 공정위에서 합병으로 독과점 가능성이 있으니 슬롯을 반납하라고 한 것보다 더 많이 반납해서 외항사에 내주고 있다. 슬롯은 항공사 입장에서 돈을 버는 수단인데 그걸 팔아가면서까지 합병을 추진하는 셈이다.”
Q. 내부에서는 합병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송민섭 지부장 : “합병에 대해 어떤 것도 발표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합병은 직원들 입장에서 불가항력이라 찬성과 반대를 나눈다는 게 어렵다. 우리는 합병 과정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어떤 근거로 없을 것인지, 슬롯을 반납한 상황에서 중복인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듣고 싶은 것이다. 설명해주지 않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한 마디로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Q. 못다 한 말이 있다면.
정지은 객실조직부장 : “누군가는 그렇게 힘들면 나가면 되지 않냐고 한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할 때 행복하다. 더 나은 환경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해 오늘 자리에 나왔다. 이렇게 암 환자가 많아지고, 현장에서는 기계처럼 쉬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은데 회사에 미래가 있을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규모나 양을 확대하는 것에서는 승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이현진 전 대의원 : “후배들에게 더욱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되었으면 한다. 업무 환경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좋은 면만 부각시켜 홍보하는 것이 안타깝다. 애정을 갖고 일하는 현직자들과 미래 후배들과 함께 건강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다.”
송민섭 지부장 :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근데, 기업의 정문 앞에서는 민주화가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업이 시키는대로 참고 할 수만은 없기에 앞으로도 이러한 목소리를 외칠 생각이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