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홍석천,커밍아웃 8년 “나는 아직도 연기에 목마르다”

[쿠키人터뷰] 홍석천,커밍아웃 8년 “나는 아직도 연기에 목마르다”

기사승인 2009-02-04 14:21:02

[쿠키 연예] 쿠키 연예팀에서는 매주 수요일 드라마, 영화, 가요 등 연예가 핫이슈 및 키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1월 드라마 리뷰에 이어 2월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스타 인터뷰를 테마로 정했다. 첫 번째로 커밍아웃 8년 만에 레스토랑 사업가로 성공하는 한편 직접 쓴 극본으로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홍석천을 만났다. 다음 주에는 1999년 도일(渡日) 이후 10년 만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봉원을 만난다.

밀레니엄 버그(컴퓨터가 연도표시의 마지막 2자리만을 인식해 1900년 1월1일과 2000년 1월1일을 같은 날로 인식하게 되면서 예상되는 컴퓨터 장애로 인한 대혼란) 탓이었을까. 서기 1901년에서 2000년을 지나 새로운 천년(밀레니엄), 새로운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된다는 말에도 유난히 들떴던 2000년.

커밍아웃, 그 후 8년

그 때 밀레니엄 버그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한국 사회에 발생했다. 커밍아웃, 당시로서는 용어도 낯설 던 그 때 홍석천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혔다.

그로부터 8년, 남의 아이 크는 것을 보면 시간이 금세 흐르는 것 같지만 아이 자신과 부모는 숱한 도전과 노력으로 세상 속을 살아갈 ‘인간’을 만들어 간다. 마찬가지다. 남인 우리에게는 ‘어느새 8년이네’ 싶지만, 커밍아웃으로 삶의 터전이었던 방송에서 쫓겨나고 아니 세상에서 쫓겨나 골방에 들어앉아야 했던 홍석천에게는 인고와 극복, 도전의 긴 세월이었으리라.

하지만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시대의 표지를 열어젖힌 듯,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한국의 문화는 한결 개방적이고 유연해졌다.

그의 인생에는 ‘무엇’이 됐는지 궁금했다. 홍석천을 만나러 그가 새롭게 마련한 음식점 ‘마이 첼시’를 찾았다. 늦은 오후였다.

“후회한 적 없어요. 더 일찍 할 것을”

이 사람이 이렇게 잘 생겼었나. 성적 소수자에 대해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해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커밍아웃의 순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속 호들갑스러운 홍석천의 모습이 연기가 아닌 본성일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 잡혔었나 보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것이 훌륭한 연기였음을 깨닫는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구분하기 앞서 그는 그저 진지한 말투와 합리적 사고를 지닌, 누구보다 큰 열정을 지닌 가슴에 품은 한 인간이었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안 합니다.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의 대표 얼굴이 됐고 의도하지 않은 위치에 서게 됐지만 커밍아웃 한 이후의 삶이 훨씬 행복한 걸요. ‘아닌 척’하는, 무슨 가면 같은 걸 쓰고 있다가 벗어버린 것처럼 후련해요. 더 이상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당당함이 주는 자유가 크더라고요.”

다시 물었다. 지금처럼 레스토랑 사업가로 성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후회 안 해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였거든요. 저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었어요. 주위에서 물으세요, 그 때로 돌아가면 또 할 거냐? 제 대답은 ‘다시 합니다’. 아니, 좀 더 일찍 할 것을 그랬나 봐요. 양지로 나오니 이렇게 좋네요.”

성공? 연예인이라 힘들고, 동성애자라 더 힘들었다

특별히 2000년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 나이 서른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서른 살이 되면 해야지, 해야지 생각해 왔거든요. 왜 서른이냐면, 뭔가를 이뤄놓았으되 그것을 놓쳐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젊음이 있을 때라고 생각했어요. 주위 사람이 아니라 제 개인적 행복을 위해서 하고 싶었어요.”

커밍아웃 이후 삶이 행복해졌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마치 안정 궤도에 오르기 이전의 고통은 잊은 듯했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이들, 어린 꼬마들에게서조차 욕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일 등을 전해들은 바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구체적 에피소드를 다시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뭉뚱그려 물었다, 힘들지는 않았어요?

“힘들었죠, 왜 힘들지 않겠어요. 커밍아웃의 출발선상에 서있었다는 게 힘들었고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방송 일에서 쫓겨난 게 힘들었지요. 무엇보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힘들었어요. 사업할 땐 사업가, 방송할 땐 배우인건데 그렇게 봐주시지 않는 거죠. 이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 ‘뭘 해도 동성애자’로 비치게 하더라고요. 인간 홍석천으로 바라봐주면 좋은데 무언가를 ‘씌워놓고’ 본다고 할까요. 사업도, 연기도 힘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연예인이니까 덕을 본 게 있지 않느냐 하시는데, 아니에요. 연예인이니까 힘들고, 동성애자니까 더더욱 힘들었어요. 누구에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그런 힘듦이었죠.”

어려울 때 친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힘겨운 시절을 생각할 때 누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물었다. “정찬 씨예요. 제일 힘들고, 동료 연예인도 저를 기피할 때 ‘우리 친구하자’며 악수를 청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정찬에게 굉장히 고마워요.”

이태원에 홍석천을 심다

홍석천은 이태원에서 다시 일어섰다. 2002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를 시작으로 태국요리점 ‘마이타이’, 퓨전 중국식당 ‘마이차이나’, 음주와 노래를 즐길 수 있는 ‘마이쏭바’, 그리고 이번엔 뉴욕 스타일의 ‘마이첼시’까지 5개의 영업점을 거느릴 만큼 사업적으로 성공했다.

왜, 이태원이고 왜, 음식점이었을까. “이태원은 대한민국에서 제가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거짓 행세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공간이었어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죠. 그래서 이태원입니다. 음식점은 먹는 것도,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그림공부도 했고요. 집안을 꾸미는 것, 잘 생긴 가구 보면 욕심나는 취미도 있고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합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레스토랑이 됐어요. 그리고 여러분 속에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언제까지나 시선을 두려워하며 숨어있을 순 없잖아요.”

그의 음식점들은 이태원 모 호텔 사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흔히 프랜차이즈 분점을 낼 때는 멀리 멀리,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내지 않던가.

“제가 요식업 사업가로 성공하는 게 목표였다면 절대 이렇게 안 했겠죠. 제 이름을 건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 두고 제가 안 보인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손님이 저를 찾으시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곳, 제가 무서운 사장이 되어 음식 하나하나 챙길 수 있는 곳이기에 분점들을 내온 거예요. ‘마이차이나’ ‘마이첼시’ 홍석천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겁니다.”

‘아워코리아’? 한국음식점은 최종 목표

이탈리아, 태국, 중국, 미국을 테마로 한 음식점을 내면서 한국은 없다. 다른 국가 관련 프랜차이즈를 더 낼 계획도 없단다. 한국은 영원히 없는 것일까. 그는 아직 없는 것일 뿐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소개했다.

“한국음식은 정말 대단한 음식이에요.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최고의 음식이죠. 그래서 함부로 시작하고 싶지가 않아요. 흔하게 먹어온 거라고 쉽게 보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하고 준비도 많이 해서 선보이고 싶어요. 한국음식은 세계화의 가능성도 큰 웰빙 음식이에요. 세계로 가는 한국요리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아워플레이스’ 이후 계속 ‘마이’를 붙여 오긴 했지만, ‘마이코리아’보다는 ‘아워코리아’가 어떨까. 한국 사람들, 유난히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엄마’ ‘내 집’을 두고도, 가족이 아닌 너에게 말할 때도 ‘우리 엄마’ ‘우리집’이라 하잖나.

자신이 설 무대를 디자인하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와 무대를 목말라했다. 영화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 ‘1724 기방 난동사건’, 드라마 ‘애자언니 민자’를 통해 간간이 목을 축이고 있지만 그의 갈증은 해갈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직접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5년 전 집필한 뮤지컬 극본을 무대에 올리려는 것이다. 홍석천은 자신이 잘 아는 쪽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고자 했다, 다른 누구보다 더 섬세한 감정 묘사가 가능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스타와 대필 작가와의 동거다. 거짓말처럼, 드라마 ‘스타의 연인’과 비슷한 설정이다. 뮤지컬 속에서 스타와 작가가 모두 남자라는 점은 다르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대본과 비슷한 설정이 이미 전파를 탔으니 맥이 풀리지는 않았을까.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는 인증을 받은 느낌이에요. 인식의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요, 스타와 작가의 동거 얘기가 자연스러운 시대란 거죠. ‘스타의 연인’ 흉내냈다는 얘기만 듣지 않는다면, 저도 먼저 대중을 만난 드라마 쪽에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 혹은 두 남자

뮤지컬의 제목은 ‘사랑’ 혹은 ‘두 남자’ 쯤이 될 듯하단다. 아예 ‘사랑 혹은 두 남자’는 어떨까. 많은 이성애자들이 사랑과 결혼 앞에서 생각하는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남자와의 사랑을 위해 커밍아웃을 불사한 그의 삶에 어울리는 타이틀이 아닐까.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구상 중이었던 남자 속옷 런칭도 미뤘지만 뮤지컬만큼은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홍석천.

뮤지컬의 꿈은 물론이고, 경력을 쌓아 도전하고 싶다는 한국요리 전문점의 포부도 현실 속 그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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