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과도한 학벌·학력주의와 지나친 입시경쟁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 근절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의 '잘 가르치는 경쟁'을 유도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입시대비 학습이 학교 안에서 충분하게 이뤄지는 환경이 조성되면 사교육비 부담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이는 본보의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본보는 전 교육부총리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 교사 등 전문가들로부터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물었다. 공교육의 정상화와 교사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사교육 유발하는 입시 개선해야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입시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재 특목고 시험은 정상적인 중학교 학습 범위를 넘어섰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특목고 입시에 대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학교 안에서 특목고 대비를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원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초·중등교육연구본부장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특목고 진학방식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학원 등 사교육기관의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정부의 감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입학사정관의 평가 뿐 아니라 일선 고교 교사들의 학생 평가도 함께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회 교과위 한나라당 간사인 임해규 의원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선 일선 중·고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대학이 신뢰해야 한다"면서 "개별 학생의 잠재력과 특기, 적성 등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내용을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교 교사들의 평가가 입시에 반영되면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들고 공교육 정상화도 어느 정도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기혜 교사(서울 대진여고)도 "대학 교육과정과 개혁에 고교 교사가 동참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학습평가와 학생평가도 일선 교사에게 일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는 재정지원을 통해 명문대학을 많이 늘려야 사교육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교육여건이 좋은 대학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교육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대학입시제도를 선진화하는 작업과 함께 학생과 학부모들이 만족하는 소위 명문대학을 30개 이상으로 늘릴 수 있도록 획기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잘 가르치는 경쟁 유도해야
공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현재 교직 사회에 만연된 '보신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음달 연세대 응용통계학과에 입학예정인 이길윤양은 "학교 다닐 때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퇴근할 뿐 아니라 수업준비는 제대로 안하고 자습서를 보면서 수업하는 선생님들도 계셨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은 "교사들이 자기계발에 소홀하고 경쟁이 없는 상황"이라며 "실제 2007년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중등 영어교사와 학생이 같은 영어시험을 쳤는데 중등 영어교사가 평점이 낮은 경우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교사들의 끊임없는 자기계발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가스터디 이석록 입시평가연구소장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업을 위한 준비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학생들의 수업 질 향상과 성적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교사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교원평가와 연계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2010년부터 전면 시행될 교원평가제에는 학생 및 학부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정부 정책은 사교육 부추겨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대입자율화와 고교다양화, 영어교육 강화 등 주요 교육정책들은 사교육비 경감과는 거리가 먼 방안들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특히 대입자율화와 고교다양화 정책은 학부모와 학생의 사교육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 소장은 "대입자율화와 고교 다양화는 수요자들에게 '또 다른 제도'로 인식돼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특히 고교 다양화는 대학입시 경쟁을 고교 입시로 확대시켜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3불(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금지)정책을 유지해야 사교육시장의 팽창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위원도 "대입자율화는 상위권 대학의 선발권 자유화를 의미하며 고교등급제, 본고사부활 등 학교 교육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정부 정책으로 사교육을 근절하는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명문대를 선호하고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 본부장은 "학부모들은 사교육이 자녀의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사교육의 부작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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