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배우 김윤석은 달변이다. 적확한 표현이 그렇고, 그야말로 기사의 제목으로 삼을 만한 비유를 적재적소에서 사용하는 감각이 그러하다. 무엇을 물어보든 거침없이 쏟아지는 답변은 결코 혀의 재주가 아니다. 그의 말은 시나리오를 탐독하고 캐릭터를 탐험하고 현장을 사랑하는 동안 그의 머리와 가슴에 쌓인 경험치, 그것이다.
[쿠키人터뷰: 김윤석①] 한국적 코미디의 진화 ‘거북이 달린다’에 이어
▶질긴 인터뷰◀ 비가 간간이 오가는 6월의 공기 속,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에게 다짜고짜, 그리고 끈질기게 물었다. ‘거북이 달린다’, 왜 그렇게 웃게 될까?
“이런 코미디 본 적 있으세요? 헐리우드식 코미디도 재미있고,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도 좋지만 나랑 비슷한 사람의 얘기, 뼛속까지 배어있는 우리 정서로 빚어진 코미디일 때 절로 웃음이 터지지 않나요? 머리로 이해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그냥 가슴에 팍팍 꽂혀 오는 거죠.”
무방비 상태로 웃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녹녹한 영화가 아니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여러 영화적 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엉뚱하게 웃음이 터지거나, 간간이 말단신경을 자극해 툭툭 흘러나오는 실소가 아니다. 정확히 의도된, 세밀하게 빚어낸 웃음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코미디도 있구나. 집 겉모습부터 그리는 게 아니라, 벽돌 하나하나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 웃음을 완성해내는 재주가 돋보였어요.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그 ‘빛나는 지점’이 영상으로 옮겨지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다면 올인 해보자 싶었죠. 한편으론 걱정도 컸지요. 이 흔치 않은, 독특한 코미디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정말 영화적으로 대박인데 자칫 잘못하면 혼자만의 독백이 될 수도 있거든요.”
김윤석은 치밀하게 의도되고 계산된 ‘거북이 달린다’의 웃음 제조법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탐미적 구도나 색감이 아닌 ‘코미디’예요. 미국의 것을 흉내 내지 않은 우리만의 것이어야 했고요. 정말, 한국적 코미디를 만드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드라마와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 캐릭터와 상황이 주는 과하지 않은 웃음. 감독이 노리는 그것에 120% 일조하려면 상대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셀 수 없이 리허설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게 원래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한 장면을 수십 수백 번 반복했어요. 느리고 고단한 작업이었습니다, 정말 거북이가 달리는 것처럼요.”
영화 속 조필성은 ‘진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는다. 살짝 충청도색이 묻어난 정도의 표준 억양을 구사한다. ‘추격자’의 엄중호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눈에 들자면 ‘~했시유’를 연발하는 게 쉬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리딩을 정말 많이 했어요. 촬영에서 가장 오래 걸린 부분이죠. 아무리 시골 동네라 해도 TV가 다 들어가고, 형사깨나 하는 사람이 심하게 사투리를 쓰지는 않습니다. 진짜로 ‘살아 있는 말’을 써야 한다는 데 감독과 뜻을 모았고, 그것은 결국 굉장한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죠.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거북이 달린다’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충청도 사투리 또는 충청도식 유머에 대해 말을 덧붙여졌다. “음, 충청도 사투리나 충청도 타입의 영화는 ‘느리다’고 생각하시는데 실제로 핵심은 ‘허를 찌르는’ 겁니다. 유유히 흐르는 드라마 속에서 허를 찌르는 유머를 만나 크게 웃으신다면 영화는 성공한 겁니다.”
또 형사다. ‘범죄의 재구성’ ‘시실리 2km’에서도 전작 ‘추격자’에서도 그는 형사였다. 전작과 같은 직업이어도 괘념치 않는 선택, 되레 같은 직업 다른 캐릭터로 다가서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앞으로도 형사 영화 또 할 건데요(웃음). 모순된 한국 사회를 그리는데 형사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는 없다고 봐요. 실제로 이야기를 열어가는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감독들이 많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소프트웨어만 다르다면 또 다시 형사로 출연할 용의가 있습니다.”
2008년 ‘추격자’는 김윤석에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줬다. 다음 행보에 약이 됐을까 독이 됐을까. 질문은 어리석고 답은 현명했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늘 영화, 작품이라는 ‘여행’을 떠나는데요. 배낭이 가벼워야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지 않나요. 가방에 상패를 넣어가지고 가면 어떡합니까. 잡다한 것 빼고 출발해야 그 가방에 새로운 여행이 주는 기념품을 담아오죠.”
김윤석은 끝으로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이 한 발 쉬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라는 세간의 추측과 예단에 대해 이런 말로 응했다. “어떻게 보면 ‘타짜’의 아귀에서 ‘추격자’의 엄중호로 진화하는 폭보다, 형사라는 하드웨어는 똑같은데 엄중호에서 ‘거북이’ 조필성으로 옮겨가는 폭이 제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컸습니다. 영화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직접 봐주세요, 저는 그 누구도 아닌 관객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뭔데 그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독재 발언 어떻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