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어머니 약값이라도 보탤까 했습니다. 어머니가 간암이에요. 정말 모르고 그랬습니다.”
건장한 30대 남자가 법정 증언대에 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복도까지 늘어선 사람들은 남자의 하소연에 작은 목소리로 불쌍하다며 수군거리더니 이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윤모(30)씨는 14일 서울중앙지법 408호 법정에 섰다. 혐의는 경범죄처벌법 1조13항(광고물 무단 첩부) 위반이다. 광고 전단지를 아무데나 붙이다 잡혀 온 것이다. 담당 판사는 측은한 듯 윤씨를 바라보더니 이것저것 정황을 물었다. 죄가 되는지 모르고 했고, 일거리가 끊겨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고, 병든 어머니를 모시려 돈이 필요했다는 답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벌금 3만원. 재판장은 “정상을 참작해 최하한도로 선고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증언대에 오른 김모(53·여)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대뜸 “제가 유방암 환자인데 식당일을 하다가 암치료를 받은 뒤 팔이 너무 아파서 전단지일을 나가게 됐습니다”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대학생인 자녀들은 스스로 학비를 벌기도 빡빡해 손을 벌릴 엄두를 낼 수가 없다는 사연도 덧붙였다. 보다 못한 재판장이 벌금 3만원을 결정하고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장은 “웬만하면 다음부터는 하지 마세요”라며 증언대를 내려가는 김씨를 타일렀다.
즉결심판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불황 탓에 윤씨의 경우처럼 생계형 경범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즉결심판 사건은 모두 118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03건)보다 68.8% 늘었다. 2007년 1분기(649건)보다는 82.9% 증가했다. 서울중앙지법 즉결심판 담당 판사들은 “적게는 하루 20∼30건에 불과했던 즉결심판 사건이 최근 100건에 육박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즉결심판은 증거가 명백하고 죄질이 경미한 범죄사건을 심리한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상승세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윤씨의 경우와 같은 광고물 무단 첩부 혐의다. 불법주차 단속을 피해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다가 단속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도로에 차를 세우는 도중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가 일당보다 많다는 하소연이 뒤따른다. 즉결법정엔 유독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 없어 한 일이 죄가 된 경우가 많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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