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애자’ 최강희 “나를 가려야 하는 숙제, 어려웠다”

[쿠키人터뷰] ‘애자’ 최강희 “나를 가려야 하는 숙제, 어려웠다”

기사승인 2009-08-24 12:03:00

"[쿠키 연예] 햇살이 스며드는 서울 삼청동 카페 창가에 앉아 여자가 메모를 한다. “어머 너는 소리가 나지 않는구나” 고악기며 인테리어 소품들에게 말을 건네며 카페 안을 ‘산책’한다. 그래, 그냥 왔다갔다 구경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그녀, 배우 최강희다.

질문지를 꺼내는 기자와 동시에, 메모장과 펜을 꺼내드는 최강희. 누가 취재원인지 헷갈린다. 낙서 비슷한 그림을 그리며 얘기를 풀어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런 친구인가. 메모수첩과 펜이 ‘마음의 자물쇠’이면 인터뷰가 겉돌 텐데…기우심이다. 둘다 필기도구를 손에 든 덕분이었을까,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이어서 답변하는 인터뷰를 벗어났다. 서로 충고도 하고 격려도 해주며 시간이 흘렀다. 함께 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낼 재간이 부족해, 겉치레 없이 솔직함이 빛났던 몇몇 얘기를 전한다.

<내 사랑> 4차원 엉뚱녀…“캐스팅 자체가 저예요”

영화 <애자>를 보기 전이라, 기자가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영화부터 시작했다. 먼저 <내 사랑>의 ‘주원’.

영화에서 최강희는 지하철 기관사 세진(감우성 분)의 여자친구로 나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4차원’녀의 절정을 보여줬다. 웬만해선 감당하기 힘든, ‘엽기적인 그녀’의 엉뚱함을 한참 넘어서는 튀는 행동과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다른 별에서 금세 도착한 ‘지구 여행자’처럼 독특한 주원이었지만, 최강희를 통해 표현되고 보니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4차원의 느낌, 어떻게 가능했을까.

“캐스팅 자체가 그냥 ‘저’였어요. 뭐랄까, 좀 귀여운 척 멋진 척 해도 용서되는 캐릭터랄까요. 그렇게 좀 미운 짓을 해도 밉게 보이지 않는 것, 여러분들이 예쁘게 봐주시는 게 ‘배우 최강희’의 장점인 것 같아요. 이한 감독께서 그걸 쓰시고자 저를 택하신 거였고, 그래서 아무런 요구도 않으셨어요. 예를 들어 콘티는 지하철 의자 위인데, 제가 바닥에 않아도 그냥 두셨어요. 저라는 배우를 많이 찍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주원이에게는 저 같은 면이 많아요.”



<달콤, 살벌한 연인>…“하고 싶어서 조급증 났던 캐릭터”

배우 최강희를 논하며 <달콤, 살벌한 연인>을 빼놓을 수 있겠나. 섬뜩하면서도 귀여운, 그야말로 살벌해서 더욱 달콤한 ‘이미나’ 역에 최강희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힘들었던 영화였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예요. 새벽 3시에 시작해 5시까지 읽은 게 시나리오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얼른 해가 떴으면, 해 뜨면 얼른 전화해서 내가 하겠다고 말해야지’ 했어요. 저를 조급하게 했던 영화죠.”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로인해 쉽게 변경할 수 없는 이미지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달콤한 추억일까, 살벌한 결과일까.

“전적으로 플러스(+)예요. 단언컨대 제가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요. 많은 것을 얻었던 작품이에요. 저예산 영화로 크게 성공했기에 더욱 기뻤고요, 그 뒤로 제가 배우로서 더 좋은 대우(^^)를 받게 해준 고마운 영화고요. 뭣보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돼 행복했거든요. 혹자는 캐릭터가 너무 셌던 걸 걱정하기는데요, 저는 되레 캐릭터가 너무 세서 훨씬 자유롭게 빠져나왔어요, 미나로 인해 불편했던 적은 전혀 없네요.”

이미나가 안겨준 ‘보너스’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가 좀 썰렁해요, 유머랍시고 구사해도 반응이 시원찮고요. 근데 미나가 종종 상대를 웃기거든요. 콘티에 제가 유머를 치면 상대는 웃도록 정해져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 설사 제가 제대로 못 웃겼다 해도 상대가 웃지 않으면 그 배우가 연기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재미있었어요, 그런 게 배우가 됐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하나지 싶어요. 그런 점에서 연예인은 몰라도 배우는 부러워할 만하고요.”

<애자>, ‘배우 최강희’ 장점과의 단절

자, 이제 <애자>와 ‘애자’ 얘기를 해볼까. 개봉 전부터 ‘애자’ 최강희는 ‘건어물녀’(<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본 만화에서 유래. 직장에서는 매우 세련되고 능력 있는 여성이지만, 퇴근 후에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즐기는 대신 집으로 가서 추리닝에 대충 묶은 머리로 맥주와 오징어 등 건어물을 즐겨먹는 여성)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건어물녀라…아무렇게나 망가져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인가,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내 사랑>에서처럼 배우 최강희의 강점을 십분 활용한 애자인가 ‘선입견’을 가졌다. 최강희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전작들의 캐릭터는 저랑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나’하면서 연기했었어요. 저를 묻혀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애자’는 저와 닮은 데가 없어요. 되레 ‘제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았지요. 앞서 말씀드렸던 잘난 척, 예쁜 척 해도 용서해주시는 ‘배우 최강희의 장점’을 포기해야 했던 영화였어요. 애자는 그렇게 용서받으면 안 돼요, 관객의 미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엔 제대로 미워해주셔야 제가 연기를 잘한 게 되는 거죠.”

문득 <국가대표>의 하정우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연기해온 ‘연기인생 1장’을 마치고 앞으로는 자신을 드러내 연기를 해보겠노라고 말했다. 최강희는 특유의 개성과 장점을 살린 연기를 끝내고 이제 자신을 감춘 <애자>로 새롭게 제2막을 열겠다며 ‘터닝 포인트’를 말한다. 두 배우를 번갈아 본다, 정답은 없다. 보다 나은 연기를 위해, 좋은 배우로 남기 위해 노력하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내소사에서 끙끙대며 애자를 품다

내면의 우물에서 캐릭터를 길어 올리지 못하는 상황, 배우 최강희는 애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그는 가장 힘들었던 촬영 일을 떠올려, 애자와 가까워진 날을 들려줬다.

“내소사라는 절에서의 촬영이었어요. 빛과 화면의 색감이 해 뜨기 전 2시간 동안 끝내기를 요구하는 장면이었죠. 연기의 귀신이신(웃음) 김영애 선생님은 당연히 이미 OK 사인을 받으셨고, 저는 다시 가야하는 상황이었어요. 해는 떴고, 다시 해질녘까지 기다려야했죠.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었던 당시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최강희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 장면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감정이 감소될 것 같아서 머리를 비우려 했어요. 연기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날 것 같은 감정이 달아나거든요. 그렇다고 웃고 떠들며 보내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았죠. 사실 그 장면에 갇혀 밥도 먹히지 않고 뭘 할 수도 없었어요. 차안에서 틀어박혀 해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김영애 선생님 말씀이 제 끙끙대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말 걸지 못하게 하는 어떤 아우라가 차 밖으로까지 풍겨 다독여주지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힘들게 애자를 만나선지 그 뒤엔 좀 수월했어요.”

소소한 캐릭터 창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개그맨 김숙, 송은이 등과 친한데 김숙에게서 애자를 발견했단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애자에게서 김숙 씨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만날 때 표정을 많이 기억해주고 사투리도 유심히 들었죠. 실제로 김숙 씨가 부산 사람이라 사투리를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최강동안․4차원․골수천사, 나를 억압하지만…”

최강희 앞에는 ‘최강동안’이라는 수식어가 앞선다. ‘4차원’ ‘골수천사’라는 말도 따라다닌다. 세월은 흐르고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고, 독특한 개성과 기부의 따뜻한 마음도 한결 같기는 쉽지 않다. 수식어와 별명들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부담스럽진 않아요. 모두 제게 보여주시는 관심이라 생각해요. 예전에 관심을 받지 못할 때는 연애를 해도 스캔들이 되지 않더라고요(웃음). 분명 최강동안, 4차원, 골수천사…저를 억압하는 부분이 있어요. 고심한 때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좀 잘 잊어버리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인가 봐요. 기왕 엎질러진 물,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하고 좋은 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에요. 물론 때로는 늘 같은 모습이다가 곱게 늙은 어느 때인가로 ‘점프’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요.”

최근 한국배우들이 미국, 일본, 중국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영화 속에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 최강희,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속에 거칠면서도 사랑스러운 그녀를 대입해 보니 꽤나 어울릴 것 같아 해외진출 계획을 종용했다. 최강희는 손사래를 쳤다.

“일단 한국영화 계에서 제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싶고요, 저를 알고 제 코드를 아껴주시는 우리나라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때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필리핀에 갔을 때 욘사마(배용준)의 대형 사진이 길거리에 걸린 걸 봤어요. 그 때 든 생각이 ‘와, 욘사마는 필리핀에 와도 모두가 알아보니 쉴 수가 없겠구나’였어요. 또 연애한 지 한참 됐지만(^^), 만약 생긴다 해도 그렇게 유명해서야 여행인들 다닐 수 있겠어요. 최강희를 알아보는 나라가 늘어나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제겐 행복만은 아닐 것 같아요.”



‘오늘’을 사는 최강희의 첫 번째 연기 변화 <애자>

흔히 ‘기회가 오면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하는 배우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접근법이다. 정신적 행복을 우선시하는 최강희의 마인드는 선택하지 않은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았는데 흥행한 작품에 대해 후회한 적 없어요. 어쩌면 제가 안 하고 그 사람이 했기에 잘 된지도 모르잖아요. 일이든 남자든 선택하지 않고 제 곁을 스쳐간 것은 ‘돌’이에요. 저 자신, 또 함께 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떳떳할 수 있게 연기하고 그래서 그 연기에 저도 관객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장차 당도하게 될 ‘큰물’에 목매지 않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최강희. 그의 첫 번째 연기 변화를 목격하게 될 <애자>가 보고 싶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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