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아이돌 가수의 개별 활동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연기자로 변신하는 발상도 문제지만 배우 지망생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측면에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연기력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돌 가수를 섭외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눈에 띈다.
△쪽박난 유노윤호=지난 4일 종영한 MBC ‘맨땅에 헤딩’은 평균 시청률 5.1%를 기록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이 6.8%일 정도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룹 동방신기의 해체 위기에도 불구하고 출연한 유노윤호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한 꼴이 됐다.
지난 9월 종영한 SBS ‘드림’에 출연한 손담비도 체면을 구겼다. 평균 시청률은 5.1%, 자체 최고 시청률은 7.0%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맨땅에 헤딩’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전혀 살리지 못한 바람에 ‘선덕여왕’에 철저히 눌렸다.
유노윤호와 손담비가 쓴 잔을 마신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잡다단하다. 기본적인 발성부터 지문 소화 능력에 이르기까지 연기력이 부족했지만 이들은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 가야 하는 주연을 맡았다는 게 공통적인 이유다. 주연이 신인 배우인 바람에 상대역에 스타 캐스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부족한 연기력을 보완해줄 배우 대신 비슷한 수준의 연기자가 중첩되다 보니 연기력 논란의 불길은 전체 드라마로 번졌다.
이는 아이돌 가수가 연기자로 성공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해준다. 연기력 논란을 중화시켜 줄 수 있는 검증된 상대 배우 없이 섣불리 주연으로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방증해주고 있다. 만약 주연이라면 상대적으로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일일드라마 내지는 주말드라마가 안전하다. 물론 이와 별개로 기초적인 연기 트레이닝은 필수다.
△‘스타캐스팅’ 누이좋고 매부좋고=숱한 연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가수가 연기자로 변신하는 이유는 상호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KBS ‘풀하우스’, ‘꽃보다 남자’ 등이 좋은 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가요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수익 구조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내수 시장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영화나 해외 시장을 노릴 수 있는 드라마에 가수가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가수가 어느 정도 연기 트레이닝만 거치면 너나 할 것 없이 배우로 변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드라마와 영화 등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듀서 입장에서도 아이돌 가수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우선 홍보가 용이하다. 특정 팬덤은 최소한의 시청률을 담보하고 한류 효과를 묶어 해외 시장도 타진할 수 있다. 2차 판권을 통한 부가상품 개발도 가능하다. 드라마나 영화가 하나의 콘텐츠를 넘어 대중문화산업으로 올라선 배경이 한몫했다.
물론 이러한 상호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대중성과 작품성,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잡아야 가능한 시나리오로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스타들에 짓눌린 무명의 설움=문제는 아이돌 가수와 작품 제작자가 서로의 이익을 좇는 와중에 잠재적인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는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주연이 됐다. 정극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제시카가 ‘금발이 너무해’ 주연으로 캐스팅 된 이유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제시카가 호명될 때마다 팬들의 괴성이 쏟아지는 등 티켓 파워를 유감 없이 드러냈다. 하루아침에 가장 어려운 연기 영역에 속하는 뮤지컬 배우로 손쉽게 변신할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일부 아이돌 가수들이 연기력 검증도 없이 인기 특수로 연기에 도전하다보니 배우 지망생들의 심리적 박탈감도 상대적으로 크다. 보통 무명 배우가 뮤지컬 주연 배우로 도약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한 뮤지컬 홍보 대행사 관계자는 “이름값 있는 스타가 나와야 흥행이 된다는 인식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가 뮤지컬”이라며 “동고동락을 함께 한 극단 연습생들이 기초 연기도 채 다지지 않은 연예인들에 밀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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