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스릴러와 코미디, 그리고 로맨스가 결합된 ‘서스펜스 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한 영화 <이층의 악당>은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한 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2층에 월세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남자가 찾는 것은 20억 짜리 찻잔. 그러나 복잡한 구조의 이 집에서 조그마한 찻잔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모녀만 사는 이 집의 여주인은 툭하면 눈물, 입만 열면 독설을 내뿜고, 그 딸은 외모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신경질만 부린다. 복잡한 구조의 집에 히스테릭 모녀까지 있는 1층을 호시탐탐 노리는 2층의 ‘자칭’ 소설가 남자의 험난한 행보가 충분히 예상될 정도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층의 악당>은 ‘서스펜스 코미디’를 표방하긴 했지만, 사실 서스펜스는 찾기 어렵다. <달콤, 살벌한 연인>보다도 서스펜스의 농도는 현저히 떨어지면, 코미디와 로맨스만이 남아 관객들을 맞이한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눈길을 잡는 이유는 단 하나. 한석규와 김혜수라는 걸출한 연기자들의 환상적인 호흡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닥터봉>이후에 한석규와 15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김혜수는 독설가이자 히스테리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실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습까지도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2006년 <음란서생>이후 다소 진지한 역할만 소화해 내면서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한석규는 능청스러우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여줘 흥행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현장에서는 애드리브까지 준비해,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이 둘의 연기는 여타 배우들의 연기했을 경우 어색했을 장면까지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한석규와 김혜수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극단적인 변화, 갑자기 이어지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갑자기 모녀보다 더 히스테리한 모습을 보이는 한석규의 연기는 일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으로 인식될 수 있었지만, 한석규-김혜수의 찰떡 궁합은 이를 희석시키기까지 했다.
도리어 몰입를 방해하는 요인은 일부 조연급 배우들의 겉도는 캐릭터에서 나왔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못난 재벌 2세의 엄기준과 한석규의 작업 파트너로 나오는 김기천은 뚜렷한 캐릭터를 선보이여 영화의 한 축을 잡았지만, 김혜수를 짝사랑하는 어리버리 연하남 형사 이장우나 시크한 ‘나쁜 남자’의 모습을 보이는 중학생 유키스 멤버 동호 등은 극의 이질감만 만들어내며, 결정적인 ‘한 방’을 선사하지 못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층의 악당>은 올해 잔인해졌던 한국영화가 <시라노 : 연애조작단> <방가?방가!> 등을 통해 다소 연해진 분위기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된다. 11월 25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