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지난 16일 중국 칭따오 드라마 <경마장> 촬영장에서 만난 장나라의 표정은 개구지면서도 차분했고, 분주한 가운데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영화 <하늘과 바다>의 흥행 참패로 인한 20여억 원의 경제적 손실,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 사실의 때 이른 발표 논란, 얼굴보다 앞서가는 나이 서른을 맞은 심리적 동요 등으로 얼굴이 어둡지 않을까 했던 것은 기우였다.
되레 <하늘과 바다> 파동을 겪기 전, 2008년이 저물어가던 겨울밤 홍대 앞 삼겹살 집에서 마주했을 때 드리워 있던 얼굴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 사람에 대한 넘치는 배려로 마음속 고민들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도 가져 봤지만, 장나라의 밝은 표정에서는 솔직함이 묻어났고 마음의 평화마저 느껴졌다.
먼저 7년의 시간을 함께한, 현재 장나라의 중국 활동을 실과 바늘처럼 함께하고 있는 소속사 관계자에게 장나라가 풍기는 한결 안정된 느낌의 ‘답’을 찾아 봤다. “순제작비만 20억 원이 넘게 들어간 영화였어요. 물질적, 심리적 타격이 컸죠. 그런데 희한하게 (부녀가) 한바탕 붙고 나더니 훨씬 더 친해지더라고요. 또 나라 씨 나이가 이제 부모 마음 알 때인 것 같고요.”
딸이 촬영하는 동안 현장 한쪽에서 딸의 연기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 주호성에게도 물었다. 대답은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1980~90년대 한국의 연극계를 주름잡았던 연기파 배우 주호성은 현재, CCTV8 채널을 통해 내년 7월 방송이 확정된 드라마 <경마장>에 주연급인 일본 장교 마쯔노 이치로 역으로 출연 중이다. 배우 부녀의 첫 공동출연이다.
“지난해 <하늘과 바다> 흥행 실패로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도 많이 잃어버렸고요, 후보에 오른 거 언론에 알린 것 때문에 나라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건 우리 ‘가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는 거예요. 딸이 어느 정도 연기를 하는지, 노래는 얼마만큼 하는지, 요즘 무슨 일이 하면서 사는지… 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거, 정작 나라가 그 일하는 속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에도 감사해요. 어려움을 겪어나가며 함께 기도도 많이 했지요. 감사한 일이에요.”
어려운 때 친구를 알아본다고 하던가, 삶이 힘에 부칠 때 곁에 있어주는 건 결국 가족이라고 하던가. 나름 험준한 인생의 고비, 사업적 절망의 언덕을 함께 넘으며 독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충, 도전자일 수밖에 없는 딸의 진심을 서로 알게 되니 ‘좋지 아니한가’.
장나라는 ‘나이 들어보니…’로 답을 돌렸다. 별 생각 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20대를 접고, 정신 차려 삶의 방향성을 잡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단다. “제가 서른이에요”, 곁에서 “만으로 하면 스물아홉”이라고 거들자 “아휴 무슨 만까지, 한국 사람이. 그냥 서른이죠” 하며 말을 이어간다.
“스물아홉까지는 별 생각 없었거든요. 서른하나, 서른둘, 서른셋 느낌 있다, 서른넷 기품 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삼십 대에) 닥치고 보니 ‘질풍노도’ 그 자체였어요. 되돌아보니 이전에 제가 뭘 했다는 느낌 자체가 없는 거예요, 일은 즐겼는데 인생을 못 즐겼기에 남은 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려고요.”
무엇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싶냐고 되묻자 꿈도 참 소박하다. “비행기 타고 여행하고 싶어요. 아직도 약 먹고 비행기 타야하고 잘 못 타긴 하는데 그래도 멀리 가보려고요. 미국으로 시집 간 친구한테 가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갔어요, 꼭 만나러 가려고요. 방송에서 외국 여행하는 연예인들 나오면 굉장히 신기했어요. ‘어휴, 일하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여행을 가지?’ 했는데요, 이젠 저도 틈틈이 해보려고요.”
10년을 달려온 연에인 생활, 이제 일을 좀 줄이려는 게 아닐까 싶은데 아니란다. “나이 들고 느끼는 건데요(웃음), 내가 TV에 나오는 걸 제가 좋아하더라고요. 중국은 한 편 찍으면 채널 별로 돌아가며 몇 년씩 방영하거든요. 몇 편 찍어 놓으면 10년은 너끈히 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몰아서 드라마 몇 편을 연기한 뒤 그 작품들이 방영되는 동안 ‘공백에 대한 부담’ 없이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니며 인생 즐길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다 보다. 작지만 소중한 꿈이 앳된 얼굴만큼이나 천진난만하다.
실제로 중국은 24부작 드라마의 경우, 한 채널에서 월~금요일 하루 5시간씩 모든 방영을 끝낸다. 그리고 다음 채널로, 또 다음 채널로 전국을 돌다 보면 3년의 시간이 훌쩍 간다. 장나라는 올해 2월에 촬영을 끝낸 <철면가녀>가 11월말 CCTV8을 통해 방영을 앞두고 있고, 지금 막바지 촬영에 한창인 <띠아오만 어의>가 내년 4월경 방영 예정이며,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경마장>은 내년 7월 CCTV8을 통한 방영이 확정된 상태다. 또 내년 3월에는 장나라에게 중국 스타배우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띠아오만 공주>(2006)의 후속작인 <띠이오만 황후>의 촬영이 시작된다. 일종의 우정출연이랄 수 있는 조연급 <경마장>을 빼도 3편의 드라마면 장나라의 말대로 “10년은 너끈”할 수 있다.
연기 부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동안 몇 가지 기대와 바람이 자리한다. 부녀를 넘어 연기 동료로 보이는 두 사람의 우정이 계속 되기를, 인생을 즐기려는 다짐을 실천하는 인간 장나라이기를, 한층 성숙한 연기 매너를 갖춘 배우 장나라의 활약이 한국에서도 이어지기를….
칭따오(중국)=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