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급 가수의 도발 그리고 대중의 시선
김장훈은 스스로 B급 가수라 칭한다. 사실 그의 데뷔 이후의 약 7년간의 행보에 비춰,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이 평가는 이해할만 하다.
1991년에 ‘그 곳에’로 데뷔했지만, 정작 김장훈이 유명해 진 건 7년이 지난 1998년 발표곡 ‘나와 같다면’부터였다. 이후 ‘난 남자다’ ‘혼잣말’ ‘오페라’ 등을 히트시켰다. 사실 이 같은 시간이 걸린 것은 김장훈 스스로 선택한 고집 때문이다. 1991년 데뷔 앨범을 냈을 때, 故 김현식 사촌동생이라는 이상한 꼬리표가 붙었고, 그것을 이용하는 듯한 분위기에 죄책감을 느꼈다. 급기야는 1991년 말 대중가요상 시상식에서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가 대상을 받게되고, 주최 측은 김장훈에게 김현식 노래를 불러달라 요청했지만, 김장훈은 시상식 당일 새벽 잠적했다. 그리고 7년간 김장훈은 가요계의 이단아였고, 스스로 B급 가수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김장훈이 집중했던 것은 방송이 아닌 공연이었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콘서트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군사부일체’ (1999) ‘살수대첩’ (2004)부터 시작해 급기야는
2006년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담은 ‘고(故) 이즈미를 생각해본다’, ‘고이자미 드소서’
공연을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장훈에 대한 평가는 분명 ‘호불호’가 갈렸다. 소극장 콘서트인
‘고(故) 이즈미를 생각해본다’, ‘고이자미 드소서’에 대해서, ‘시원하다’ ‘김장훈답다’라는 호평도 이어졌지만, ‘한 나라의 수상을 고인으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 ‘콘서트 홍보에 민족주의를 이용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김장훈은 가요계에 이단아였지만, 사회적으로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B급 가수의 A급 선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부터 경기도 부천시의 ‘새 소망의 집’을 후원했고, 경기 고양시에 청소년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다. 2006년에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해 사비 1억원을 털어 가출청소년 쉼터 버스인 ‘꾸미루미’를 만들었다. 고교 시절 퇴학을 당하고 방황의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청소년들의 고민을 안을 수 있었다. 그런 김장훈이 간간히 연결되던 독도와 인연을 맺으며, 김장훈은 국내외에서 특별한 존재로 떠올랐다.
◇ 김장훈 “안하면 못사는 것. 독도와 공연”
사실 김장훈이 독도와 연결되어 대외적으로 언론에 언급된 것은 2005년 3월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홍경민 단독콘서트에서였다. 당시 김장훈은 ‘오노’ 복장으로 깜짝 등장해, ‘할리우드 액션’을 선보인 후 홍경민과 함께 손을 맞잡고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쳐,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후 독도와 관련해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비판하는 콘서트를 개최한 김장훈이 다시 독도와 연을 맺는 것은 2007년 7월 사이버 외교활동을 펴는 반크에 CF모델로 1억 전액을 기부하면서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김장훈의 기부는 1998년부터 해오던 소년소녀가장과 보육원 등에 30억원을 기부했던 것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2008년 5월 반크의 홍보대사에 위촉되고, 그해 7월 자신이 전액 비용을 흔쾌히 내놓아 한국홍보 전문가 서경덕씨와 손잡고 미국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에 동해와 독도를 알리는 전면광고를 게재하면서 김장훈과 독도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라는 헤드라인 아래 한반도 주변지도와 함께 “지난 2천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려 왔고, 동해에 위치한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이 광고로 김장훈은 일부 일본 국민들로부터 협박 메일까지 받았다.
그러나 국내의 인식을 확연히 달라졌다. ‘기부 천사’ 김장훈은 ‘독도 지킴이’ 김장훈으로 활동의 폭을 확연히 넓혔다. 한 언론사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국민의식 여론조사에서 김장훈은 ‘가장 훌륭한 업적 남긴 인물 - 문화예술인 부문’에서 소프라노 조수미, 배우 배용준, 작가 박경리 등에 이어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배우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영화 감독인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포함됐다.
김장훈의 독도 사랑은 그가 가수 데뷔 이후 가장 공들이고 아꼈던 공연과 동일시됐다. 그는 2008년 MBC ‘네버엔딩 스토리’에 출연해 “제가 동해 때문에 방송을 접었다”며 “방송을 접고, 안하면 못 사는 것 두 가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하면 못 사는 것 공연과 독도 두 가지라고 생각해 이것만 당분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장훈은 미국 3대 신문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일본해 표기가 틀렸음을 지적하는 전면광고가 잇따라 실었고, 2010년 1월에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독도 광고를 전액 후원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일본 극우파에게 협박메일을 받기도 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김장훈은 “지난해 뉴욕 타임스퀘어에 독도광고를 게재했을 당시 영토분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2011년을 맞아 독도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예정인데, 이번에도 역시 비난과 협박을 받고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통해 일본 극우파가 "김장훈의 콘서트를 열지 못하게 하겠다"며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독도에 대한 김장훈은 확고하다. 그는 “새해 초부터 분위기를 조성해 3.1절, 8.15 광복절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 국민들에게 독도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겠다”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김장훈은 “3·1절을 즈음해 독도에서 공연을 갖고 싶다. 독도가 특수지역이라 외교부 등 독도를 관리하는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독도가 안된다면 독도 인근에서라도 (공연을)하고 싶다”며 의지를 전했다. 어느 새 독도는 공연, 기부와 더불어 김장훈을 살게 하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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