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한 분야에서 ‘개척자’라는 말을 듣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그것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가요에서 말이다. ‘한국 팝발라드의 개척자’라 평가받는 故 이영훈 작곡가의 존재감이 2011년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통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 서정적인 작곡가, 가요계를 바꾸다
지난 2008년 2월 14일 새벽 대장암으로 별세한 故 이영훈 작곡가는 어릴적 어머니가 취미생활을 하라며 사준 피아노를 접한 후에 음악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스스로 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누구나 아는 명곡 ‘소녀’는 이미 고등학교때 초고를 잡아놓을 정도였다.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했지만, 군 제대 후 연극과 영화,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이후에 연극 ‘연극알’ ‘발코니’의 음악을 맡았고, 서울미술관 50주년 개관기념 음악 등 순수 예술 영역에서 활동했다.
이영훈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시점은 1985년 가수 이문세를 만나고부터다. 당시 가수보다도 진행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이문세에 대해 이영훈은 “성공하지 못한 가수였고, 어리고 자기 창법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문세는 이영훈과의 만남에 대해 “어느 날 (신촌블루스) 엄인호 작곡가에게 괜찮은 신인 작곡가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이영훈씨를 소개해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친구가 피아노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때 연주했던 곡이 ‘소녀’라는 곡이었는데 내 심장을 치더라. 그래서 곡을 달라고 했고 이후로 ‘휘파람’, ‘할 말을 하지 못했죠’ 등 주옥같은 곡들이 나왔다. 그리고 6개월간 동고동락한 끝에 타이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녀’ ‘빗속으로’ ‘할 말을 하지 못했죠’ 등을 연습한 후 그 다음해인 1986년 앨범을 냈다. 이문세에게는 3집앨범. 타이틀곡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 150만장이 팔려나가는 ‘대박’을 쳤다. 이영훈은 이듬해 골든디스크 작곡가상을 수상했으며, 1987년 발표된 ‘사랑이 지나가면’은 280만장을 기록했다. 1988년 ‘가로수 그날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이 수록된 이문세 5집을 발표해 이문세가 골든 디스크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멜로디를 들고나온 이영훈은 외국 팝 일색인 라디오의 선곡을 이문세의 곡으로 채우게 했고, 한국적 팝 발라드의 흐름을 바꿔놨다. 수려한 가사와 현악이 버무려진 서정적인 멜로디는 대중들의 감성을 건드려 놓은 것이다.
이문세와 헤어짐…‘거목’으로 남다
연이어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와 가수가 헤어지면 대중들은 궁금해했다. 수입의 문제인지, 음악적 변화의 문제인지. 이영훈과 이문세의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왜 그들은 헤어졌을까. 가요계의 흐름을 바꿔놓은 이들의 이별에 대해 당시 많은 추측이 나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이들은 입을 열었다.
이영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음악적인 한계를 느꼈다. 음악엔 여러 장르가 있는데, 이문세라는 한 가수를 통해서만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제가 하고 싶었던 연주곡을 녹음해서 앨범을 냈다”라고 당시를 소회했다.
이문세 역시 방송에 나와 ““이영훈은 이문세의 그늘, 이문세는 이영훈의 그늘이 있더라. 세월이 지나고 보니 서로에게 맞춰주는 음악을 하게 된 것”이라며 “각자 활동할 시간이 필요했다. 팬들은 결별한 것 아니냐고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다음 앨범부터는 또다시 같이 만들기 시작해 13집 앨범까지 계속 함께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이영훈은 지난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두 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암세포가 위까지 퍼졌고 2007년 12월 2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재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끝내 2008년 2월 14일 숨졌다. 그리고 1년 후인 2009년 2월 14일인 광화문 정동길에 노래비가 건립됐다. 대중작곡가를 위해 노래비가 건립되기는 이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2년 여가 지난 2011년 이영훈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로 다시 살아난다. ‘광화문 연가’는 이영훈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영훈의 주옥같은 곡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녀의 사랑을 가슴 시리게 전한다. 이영훈이 2004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온 작품으로 대장암으로 투병하는 가운데도 시놉시스 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난 1월 2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부인 김은옥 씨는 “남편 이영훈 씨는 생전에 사람을 참 좋아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항상 상상했다. 생전에 이 뮤지컬이 완성되는 것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는데 하늘에서나마 기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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