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새해 초부터 프로축구 각 구단의 해외 전지훈련이 이뤄졌다. 해외 전지훈련장에는 각 구단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모두 내달 5일부터 시작되는 K리그에서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1년간의 길고긴 여정에 대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전남 드래곤즈가 훈련하고 있는 일본 미야자키를 다녀왔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우승 이룬다”
지난 20일 오전 10시30분 일본 미야자키 시가이아 이벤트 스퀘어. 프로축구 전남의 전지훈련 마지막 날. 이날 일본 프로축구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전지훈련 마지막 일정인데다 이틀 전 서울 FC를 3대 1로 이긴 강팀과의 경기인 만큼 선수들의 모습 속엔 긴장감이 흘렀다. 히로시마에서 외국인 선수 2명과 귀화선수 이충성이 출전하는 만큼 경기장 주변에는 100여명의 일본 관중과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정해성 감독은 “그동안 훈련하면서 쌓아왔던 기량과 전술을 잘 펼쳐보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초반은 히로시마가 경기를 주도했다. 전남은 상대 미드필더 미하엘 미키치에게 오른쪽 측면이 뚫리며 공을 넘겨 받은 다비드 무지리에 선제골을 내줬다. 하지만 심기일전한 전남은 10여분 후인 전반 22분 상대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 패스를 넘겨받은 김명중이 골망을 흔들어 1-1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후반 35분에도 김명중이 사이드에서 올라오는 공을 그대로 골로 연결시키며 2대 1로 승리를 거뒀다. 전남은 전지훈련 동안 가진 친선 경기에서 4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친선경기였지만 실전을 방불케 했다. 양 팀 합쳐 옐로우카드가 두개가 나왔고 격렬한 태클과 몸싸움도 오갔다. 전반 30분쯤에 전남의 간판 공격수 지동원이 골대 앞에서 상대의 강력한 태클로 쓰러졌다. 정 감독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코치진에게 다급하게 “빨리 가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다행이 큰 부상은 아니어서 얼음 찜질만 하고 지동원을 벤치로 불러들였다”는 코치진의 보고를 듣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격렬한 공방도 있었다. 후반 5분 수비수의 태클에 쓰러진 미하엘 미키치가 전남 송정현의 몸을 밀치면서 양 팀 선수들끼리 엉켜 집단 패싸움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경기를 마친뒤 정 감독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묻어났다. 정 감독은 “전지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면서 “특히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발전한 것 같아 감독으로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정해성과 이운재 “2002년 영광을 다시 한 번”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일본 미야자키에서 만났다. 주인공은 당시 코치였던 전남 정 감독과 4강 진출의 주역이었던 골키퍼 이운재. 두 사람은 국가대표팀에서는 자주 만났지만 유독 K리그에서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정 감독과 이운재 모두 지난해 말 나란히 전남으로 둥지를 옮겨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전지훈련장에서 올시즌 K리그 우승을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에 들어갔다.
미야자키에서 만난 이운재는 한국 나이로 서른 아홉이지만 전성기 때의 몸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표정도 한층 밝았다. 지난해 말 수원에서 이적했지만 주장을 맡으면서 나이가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후배들과도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19일 훈련에서는 후배들이 약간 지친 모습을 보이자 프리킥 5대 5 게임을 해 진 팀이 상대에게 햄버거 세트를 사주는 내기를 했다. 지동원과 류원우 등 어린 선수들이 골을 먹는 이운재를 향해 “형 그것도 못 막아요. 일부러 안 막는 거 같아요”라고 장난을 치자 이운재가 “야! 이걸 어떻게 막냐. 슛이 정말 좋다”며 후배들을 다독였다. 결국 이운재가 햄버거 세트를 모두 샀다. 이운재는 또 팀의 막내인 19살 이종호에게 “내가 첫사랑에만 실패 안했어도 너 만한 아들이 있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의 이운재를 바라보는 정 감독도 “처음에는 애들이 식사하면서 이운재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이 애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해 팀 분위기가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우리 팀 선수 평균 나이가 23.4세다. 우승을 하기 위해선 신구 조화가 잘 맞아야 한다. 그래서 경험 많고 노련한 이운재를 영입해 주장으로 세웠다. 이운재는 우리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 내가 데려온 선수”라고 말했다.
이운재도 감독과 팀의 기대를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운재는 “이적해서 주장을 맡았는데 대표팀 시절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배가 생각났다. (홍명보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와 못 뛰는 선수를 하나로 묶는 방법이 생각나더라”고 소회했다. 이운재는 “전남에는 화려한 선수는 없지만 응집력이 센 팀이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하나가 될려는 모습이 보인다. 감독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무조건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미야자키= 국민일보 쿠키뉴스 글·사진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