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이영훈의, 이영훈에 의한, 이영훈을 위한 뮤지컬

[Ki-Z 공연] 이영훈의, 이영훈에 의한, 이영훈을 위한 뮤지컬

기사승인 2011-03-26 13:02:00

[쿠키 문화]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이 성공하는 요인으로는 대개 배우를 우선 꼽는다. 스토리도 낯설고, 뮤지컬 넘버도 낯선 상황에서 초연 창작 뮤지컬이 기댈 곳은 배우들의 명성이다. 때문에 대작 초연 뮤지컬의 경우에는 스타 마케팅에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 김준수가 출연하지 않았을 경우, 지금과 같은 관심을 모았을까.

그런데 초연 창작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배우가 아닌, 무대 곳곳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관객들의 가슴을 녹여낸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고 이영훈 작곡가의 30편의 명곡으로만 꾸며졌기 때문이다.

이미 1985년 이후 가요계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히트를 쳤던 노래들로 2시간 50분 (인터미션 20분 포함)을 가득 채웠으니, 스토리를 몰라도,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누군지 몰라도 이미 관객들의 감정은 추억을, 첫 사랑을, 슬픔을 느끼게 된다.

시대는 학생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1980년대다. 작곡가 ‘상훈’ (송창의)은 ‘여주’ (리사)를 사랑하지만, 운동권 후배 ‘현우’ (김무열)도 ‘여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놓아준다. 그리고 이런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상훈’의 노래로 탄생된다.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여느 신파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하지만 놓아주고, 사랑하지만 잠시 헤어지는 스토리는 진부하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한 아름다운 음악들이 감싼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배우들의 열연도 볼만하다. 그러나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영훈 작곡가의 30편의 노래가 뮤지컬 전체를 지배하기에, 사실 배우들이 개개의 캐릭터를 강조해 튀어나올 여지는 적다. 그들이 노래를 따라가기에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관객들 역시 뮤지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었다. 아름답고 슬픈 얘기가 무대에서 펼쳐지지만, 사람들은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했다.

물론 배우가 노래를 넘는 경우도 조금씩 존재했다. 특히 1막 마지막을 장식한 ‘여주’의 열창은 탁월했다. ‘여주’ 역의 리사는 학생 시위 도중 투신하는 학생을 배경으로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극장 구석구석에 전달했다. 곡 후렴구에서 내뱉은 고음은 ‘여주’의 눈물이었고, ‘절규’로 전달됐다. 이 장면에서 리사는 이영훈의 곡을 뛰어넘어, 배우가 관객들의 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광화문 연가’가 ‘이영훈의, 이영훈에 의한, 이영훈을 위한 뮤지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뮤지컬 기획과 집필에 골몰했다고 알려진 이영훈 작곡가의 열정이 묻어있기도 했지만, 작곡가 ‘상훈’에 그가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또 2막 후 배우들이 검은 색 옷을 입고, 이영훈 작곡가의 사진을 배경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은 추모식을 연상케 했다.

물론 ‘광화문 연가’의 익숙한 곡들은 향후 ‘광화문 연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관객들에게 스토리가 있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극 내지 배우들의 연기가 곁들인 콘서트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배우들이 음악에 묻히는 상황과 연결된다. 다소 긴 러닝타임도 어느 순간 감정의 몰입을 방해했다. 애절한 사랑과 슬픔도 연이어 연결되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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