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人터뷰] ‘두만강’ 장률 감독, 집단을 경계하다

[Ki-Z 人터뷰] ‘두만강’ 장률 감독, 집단을 경계하다

기사승인 2011-03-26 13:05:00

[쿠키 영화] 장률(39) 감독의 시선은 사람들이 볼 때 불편하다. 왠지 모르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어 보이는 화면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그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저점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흐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장률 감독의 시선을 조금 이해하고, 같은 자리에 서서 보면 그 불편함이 사실상 장률 감독의 시선 때문이 아닌, 우리의 시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집단을 항상 경계한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믿지만, 집단으로 뭉쳐진 모습에 대해서는 일단 삐딱한 시선을 던진다. 그의 여섯 번째 영화 ‘두만강’에 대한 얘기도 대부분이 이 집단에 대한 설명이었다.

‘두만강’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사는 조선족과 탈북자가 처음에는 서로를 돕는 모습을 보이다가, 탈북자들이 조선족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면서 조금씩 인간 본연의 심성이 드러나 반목(反目)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안에서 ‘조선족’과 ‘탈북자’라는 집단이 보이고, ‘어른’과 ‘아이들’이라는 집단이 보이고,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라는 집단이 드러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의 시선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든다. 어느 새, 관객들은 영화속 흐름과 인물들을 이분법으로 나눈다. 인물들은 ‘박씨’ ‘이씨’ 등의 개별 존재가 아니라, 어느 새 ‘탈북자’ ‘조선족’이라는 집단에 포함되어 인식되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 저 사람 접촉하다보면 ‘좋다’ ‘나쁘다’는 등의 감정이 나온다. 거기서 갈등도 생기고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탈북자’라는 집단을 놓고 보면,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보면 관객들은 자기 삶이 보일 것이고 공감할 것이다.

이는 바로 영화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관객들을 이분법화 시키는 장면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바로 영화에서 탈북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조선족 여인 ‘순희’가 그 탈북자에게 겁탈을 당하는 장면이다. 관객들은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을 모두 ‘탈북자’와 ‘조선족’으로 나뉘게 되며,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각에서 이 장면을 두고 “왜 꼭 집어넣었어야 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거꾸로 그 장면을 넣지 않을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불편하고 이상한 눈길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이유로 충분치 않다. 실생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갈등한다. 그럼 그 이야기를 덮어야 하는가. 물론 관객들에게 편하게 보여주려고 왜곡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강간을 장치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아픔을 다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탈북자’의 불쌍한 모습만 바란다. 그것은 자기 편한대로 보려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장면이 불편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에 대한 불편함, 인식은 영화 외적인 현실에도 존재한다. 중국인 국적을 가진 장률 감독이 조선족과 탈북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 ‘두만강’을 한국에서 개봉하기 때문이다. 장률 감독 개인 자체를 두고 본다면, 예술로만 바라볼 수 있지만, 앞서 나열한 중국, 한국, 북한의 집단 성향을 고려한다면, 정치적인 부담감이 없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러니 세상이 이상한거다. 영화 상영을 평양에서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정치적인 부담감이야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생각하면 이런 영화 찍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한쪽 집단의 시선에서만 영상을 담아내야 한다. 지난 시사회 때 어느 분이 탈북자 인권의 입장에서 다시 찍을 생각이 없냐고 묻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다”

집단은 또하나 존재한다. 그런데 이 집단의 존재는 당황스러울 정도다. 조선족 아이들과 탈북자 아이들은 ‘조선족’과 ‘탈북자’라는 이질적 집단에 각각 속해있으면서도, ‘아이’라는 동질적 집단에도 속해있다. 그런데 ‘순희’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을 기점으로 이들은 ‘아이’라는 동질적 집단에서 탈퇴해, 이질적 집단으로만 흡수된다. 그러다가 다시 축구로 인해, 일부는 동질적 집단으로 들어오지만 여전히 이질적 집단으로 남는 아이들도 있다.

집단을 벗어나 보면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싸움과 화해의 연속인데, 이를 정치적 집단에 편입시켜 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셈이다.

“아이들이 조선족과 탈북자의 나눠서 보는 것도 집단의 시선으로 봐서 그렇다. 어디든 선과 악이 있다. 이 마을 저 마을도 있고, 한국은 지역감정이 있다. 계속 이분법으로 생각하니 그런거다. 이쪽도 좋은 사람이 있고, 저쪽도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불편하거다. 자기 사람만 보고 싶고, 보게 된다. 또 어른들의 계산된 시선으로 봐서 그렇다. 어른들은 현실을 계산한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목숨까지 던지는거다. 현실 그대로를 보여줘야지, 아름답게 영화를 만들려면 더 나쁜 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만강’은 장률 감독이 내놓은 작품 중에서 상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평가는 영화 내용이 우리가 흔히 아는 상업영화로서 성공하기 위한 주재료인, 코미디, 액션, 블록버스터, 멜로의 장르를 집어넣었다는 말이 아니다. 장률 감독의 전작들보다는 한결 편안해졌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장률 감독의 성장 배경과 영화의 연관성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여질 듯 싶다.

장률 감독은 중국 연변(延邊)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와 부모님 밑에서 자란 교포 3세다. 연변대 중문학 교수에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2004년 영화 ‘당시’로 데뷔했다. 그렇다보니, 영화 ‘두만강’에 투영된 모습들은 장률 감독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전작들이 ‘어떻게 보여줄까’ 때문에 힘이 들어갔다면, ‘두만강’은 ‘무엇을 담아낼까’로 초점을 옮겨서인지 힘이 충분히 빠진 느낌이었다.

“상업적이 느낌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난 그동안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아마 ‘두만강’이 지금껏 만든 영화 중에 가장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좀더 따뜻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며, 나 스스로는 힘을 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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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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