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젊은 가수들에게 밀린다고?…인순이를 보라

[Ki-Z 사람] 젊은 가수들에게 밀린다고?…인순이를 보라

기사승인 2011-04-16 13:01:00

[쿠키 연예]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3년 한 매체에 실린 기사 내용 중 일부다.

“혼혈여가수 인순이 씨가 오는 13일 경기도 송탄 미 공군기지 혼혈아센터에서 2만6000달러(약 2000만원)를 혼혈인협회에 기증할 예정이어서 눈길”

당시 인순이는 무대 매너나 가창력보다 ‘혼혈가수’라는 점이 부각됐다. 혼혈인으로 성공한 사례에도 꼬박꼬박 등장했다. 그러나 2011년 현재 인순이에게 ‘혼혈가수’라는 타이틀은 사라졌다. ‘가창력 종결자’ ‘후배 여가수들의 롤모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었다. 인순이를 검색하면 샤이니의 ‘링딩동’이 연관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방송에 나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링딩동’을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7080세대 가수들이 아직도 옛 시절을 못 잊고 자신들의 주요 타깃을 40~50대이상으로 잡고 활동하는 동안 인순이는 자신의 팬 층을 10대까지 끌어내렸다.

◇ 먹고살기 위해 부른 노래, 그리고 혼혈

인순이는 18세 때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녀들이 가지 않은 군부대가 없었다. ‘희자매’외에도 ‘숙자매’ ‘바니걸스’ ‘펄 시스터즈’ 등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는 80년대 초반 대학가요제 등의 인기로 달라졌다. 방송에서 ‘자매’들은 사라졌다. 이들의 터전은 행사장이나 밤무대로 바뀌었다. 해체한 팀도 많았지만 인순이는 꾸준히 노래를 불렀다. 80년대 중반 솔로로 나선 인순이는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 할 그 사람’과 ‘밤이면 밤마다’를 불러 반짝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혼혈가수’였다. 방송이나 신문뿐만 아니라 그를 소개하는 모든 글은 ‘혼혈가수’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혼혈’에 대한 아픔은 고스란히 딸에게도 이어졌다. 1994년 박경배 경희대 대학원 교수와 결혼한 인순이는 미국에서 딸을 낳았다. 혼혈이라는 우리 사회의 차별이 걱정되어 미국 시민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였다.

◇ 열린음악회 그리고 ‘친구여’

시대가 바뀌면서 어린 가수들에게 밀려 점점 묻히는 듯 했던 인순이는 1993년 KBS 1TV에 음악프로그램 ‘열린 음악회’가 생기면서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립싱크 위주로 점점 변질되어가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지쳐있던 시청자들은 ‘진짜’ 노래하는 가수들이 나오고 다양한 음악들이 선보이는 ‘열린 음악회’에 빠졌다. 그리고 그곳을 인순이가 평정했다.

‘밤이면 밤마다’ 등으로 객석을 휘어잡던 인순이는 어느새 프로그램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인 가수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인기 있던 어린 가수들이 나와도 인순이가 등장하는 날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인순이가 2004년 대형 사고를 쳤다. 2004년 6월 초 래퍼 조PD와 함께 부른 곡 ‘친구여’로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젊은 층이 인순이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인순이는 당시 젊은 가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배꼽 티와 핫팬츠를 입기 위해 등산을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난 히트곡 없는 디바,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다”

현재 전국투어 중인 인순이는 다음달 7,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더 판타지아’(THE FANTASIA)를 공연한다. 인순이 특유의 카리스마를 담은 차별 있는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 한국판 라스베이스 쇼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도 콘서트에서 가장 잘 녹여낸다. 그래서 원곡을 모르는 이들은 인순이가 부른 모든 노래를 인순이 곡으로 알고 있다. 인순이는 이를 두고 스스로 ‘히트곡이 없는 디바’라고 말했다.

“전 히트곡이 없는 디바죠. 요즘은 히트곡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히트곡이 잘 만들어지던 과거에도 제 히트곡은 없었어요. 콘서트에서 한 두곡을 제 곡으로 하고 나머지는 남의 곡을 노래했죠. 지금은 콘서트의 반 정도를 제 곡으로 메울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곡이 없기 때문에 더 노력을 한 것 같아요. 만일 제가 히트곡이 많았다면 거기에 안주했을 거에요. 그래도 여전히 히트곡으로 공연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죠.”

인순이는 많은 후배가수들의 롤 모델이다. 하지만 인순이는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이 롤 모델 아니겠는가. 제 또래 동료가수들이 없는 탓에 내가 꼽히는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해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존경 받을만한 무엇인가를 쥐고 있어야 한다.

“제 팬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제가 노력을 해야죠. 재즈 배우러 미국에 가고, 창도 배우고, 또 트랜디한 요즘 노래도 하죠. 그래야 제 팬들도 새로운 것을 접할 것 아니에요. 제가 노력하는 이유 1순위가 제 팬들 때문인 셈이죠. 원색적으로 이야기하면 치열하게 사는 거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