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흔히 게이라고 하면 ‘꽃미남’이거나 ‘과도하게 여성스러운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6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감독 이혁상·제작 친구사이)은 편견을 완벽히 깬다. 영화에는 잘생긴 배우도,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그러나 게이(남성 동성애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신도 게이인 이혁상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네 명의 게이에게 카메라를 비춘다. 스태프와 배우에게 큰 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소심한 게이 감독 ‘준문’, 일과 사랑을 모두 지키고픈 ‘병권’, 시골에서 올라온 숙맥 게이 ‘영수’, 첫눈에 반한 애인과 행복한 동거 중인 ‘욜’.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결국 ‘동성애’에서 만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은 밤만 되면 게이들이 몰려드는 ‘게이를 위한 낙원’이다. 이태원과 함께 대표적 게이 커뮤니티로 꼽히는 이곳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친구와 애인을 찾고, 세상에서 소외된 마음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영화의 배경을 종로를 택한 데 대해 이 감독은 “나도 동성애자로 종로를 즐기고 있기도 하고, 종로라는 곳이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게이 중에도 게이문화를 즐기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감독은 ‘종로’라는 보금자리를 알려 주고 싶어 했다.
영화를 제작하며 이 감독을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세상에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보다 ‘이 작품이 게이에게조차 지지 받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고민이 더 컸다”고 털어놨다.
“막상 종로에서 촬영 카메라를 드니 게이 선배들이 ‘지금도 잘살고 있는데 왜 종로에 게이가 많다는 것을 알리려 하느냐’며 강하게 촬영을 거부했고 욕도 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감독은 기존의 퀴어(동성애를 다룬) 영화에 비친 변태나 희화화 된 모습의 게이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며, 게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수차례 전했다. 결국 마음은 움직였다.
이 감독은 “최근 카메라를 들고 종로 거리에 나섰을 때는 손가락으로 브이(V)를 하며 예쁘게 찍어 달라고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는 사람도 많더라”며 웃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비 성소수자들에게도 성소수자의 모습이 거부감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속 게이들은 취미 활동을 드러내 놓고 할 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눌 때 같은 소소한 순간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칭했다. 비 성소수자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 성소수자들에게는 큰 행복이 되는 것을 보노라니 우리가 끝없이 찾고 있는, 우리가 놓아버린 ‘파랑새’가 날아간 곳이 보이는 듯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