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고수는 세련된 외모 속에 털털하고 순박한 성격을 품은 게 매력인 배우다. 영화 ‘고지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신하균이 “고수의 촌스러움에 반했다”고 말할 정도다. 우직한 배우 고수의 품성은 소박한 자연인 고수에게서 나온다. 도시적 외모와 달리 홀로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며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는 시골스러운 사내다.
배우 고수의 매력은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고지전’에서도 빛을 발한다. ‘고지전’은 19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25개월간,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서로를 죽이며 싸워야만 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연기한 김수혁은 영화 초반에는 겁 많은 순수한 대학생으로 등장하지만 전쟁을 치르며 180도 달라진 악어중대 중위로 변해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고수는 특유의 선한 눈망울과 배우로서의 우직한 성실함으로, 전쟁이 순수한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 냈다.
지난 18일 이른 아침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고수를 만났다. 환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걸 좋아한다며 “해 뜰 때까지 자는 건 너무 싫지 않나요?”라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고수는 질문 하나에도 한참을 고민하고 신중하게 답했다. 중간 중간 창밖을 보며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 말했고 엉뚱한 답변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고지전’ 이야기를 할 때는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백야행’에서의 푸른 빛 감도는 우수에 찬 연기, 인간미 넘치는 촌스러움으로 영화 초반 웃음을 주다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사명감을 갖게 되자 내면 깊은 곳의 초능력을 끌어내 끈질기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 줬던 ‘초능력자’에 이어 이번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다.
“수혁이라는 인물은 일반적인 악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 안에서 착했다가 나빠지는 변화가 있어 마음에 들었고 예전부터 전쟁영화를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연기 변신을 위해 일부러 택한 것은 아니에요.”
“난 매일 기도해, 누구든 모두 죽게 해 달라고…”. 김수혁이 외치는 말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전쟁터에 끌려가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면서 죽음에 무뎌진 인물의 성격을 한눈에 드러내는 대사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평범했던 수혁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고 전쟁이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상황에 처한다면 저도 수혁처럼 변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거죠. 싸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쟁영화다 보니 촬영하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서운 추위와의 싸움이 이어졌고 찢기고 피나는 작은 사고는 수없이 발생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비례해 배우와 스태프들은 더욱 똘똘 뭉쳤다.
고수는 “힘든 촬영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배우들과 ‘과연 개봉하는 날이 올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보니 제작 과정이 매우 알차고 좋았다”면서 “배우들과 고된 촬영을 끝내고 저녁에 마셨던 맥주는 꿀맛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촬영이 끝나고 났을 때는 큰 경험을 했고, 큰 산을 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고생했던 배우들과 만나면 아직도 그때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며 웃었다.
일테면 이런 얘기다. “막내 이다윗을 놀리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한 적도 있었고요, 아침이면 늘 신하균 선배님이 복식호흡에서 나오는 특유의 ‘허허허’ 웃음소리를 내셨어요. 그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곤 했죠.”
함께한 동료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싶었더니 역시나 “배우들 간의 호흡은 120점이었다”며 최고 점수를 매겼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점수는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라며 말을 아꼈다.
고수는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다 눈물을 보였다. “평소 영화를 보며 잘 웃고 울어요(웃음). ‘고지전’은 전쟁영화다 보니 남자들이 더 감정 몰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군대를 다녀오고…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테니까요.”
‘고지전’은 1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때로는 이런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고수는 “그런 관심과 기대를 만끽한다”면서 해맑게 웃으며 소개팅 상황 극을 즉석에서 선보였다.
“제가 소개팅 주선자이고 관객과 ‘고지전’을 만나게 해 주는 상황인 거예요. 그러면 저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만나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할 거예요. 정말 자신 있는 영화입니다.”
고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아직 작품 경험이 많지 않아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 보고 싶다”며 “특히 괴짜 캐릭터나 장애가 있는 역할을 꼭 해 보고 싶다”고 맑은 눈을 반짝였다. 또 배역과 상관 없이 “많은 분들이 고수를 떠올리면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인터뷰 사진=이은지 기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