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흰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 무표정일 때는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매섭지만 활짝 웃어 보일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포근하다. 특히 눈가에 지는 주름은 그의 환한 웃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배우 신하균이 풍기는 아우라다.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지난 13일 신하균을 만났다. 그에게는 데뷔 13년 차 배우다운 여유로움과 관록이 묻어났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손동작을 써가며 이야기에 몰입했다. 다소 곤란한 질문에는 미소로 대신하기도 했다.
신하균은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고지전’에서 또 군복을 입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웰컴투 동막골’(2005)에 이어 세 번째다. 앞선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고지전’ 역시 개봉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신하균이 군복을 입으면 성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훈 감독의 신작 ‘고지전’은 19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25개월간,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하균은 악어중대에 파견된 방첩대 강은표 중위로, 전쟁과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그는 ‘고지전’을 두고 “오랜만에 나온 웰 메이드 영화”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의 영화를 칭찬하는 게 멋쩍었는지 미소가 뒤따른다. 영화에 대한 칭찬은 계속됐다.
“이 영화는 우리가 모르는 지점을 다룹니다. 다른 작품들을 통해 전쟁이 시작되는 부분은 많이 소개됐지만 마무리 단계는 아직 생소하잖아요. 우리 영화는 전쟁의 마지막 지점을 그리며 전쟁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 줍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죄악이라는 메시지도 전하고요.”
전쟁영화인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 것은 미리 각오했다. 시나리오가 지닌 매력에 끌려 선택한 작품이었다.
“배우라면 전쟁영화 촬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그랬다. 군복과 군장, 철모를 쓴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경사진 면을 계속 뛰어 오르내려야 했다. 대단한 체력 소모였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몸을 부대면 마음도 가까워지는 법. 함께 겪어 내야 할 힘들고 어려운 촬영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배우들과 친밀해졌다.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쉬는 날에는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군인들이 제대할 날짜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촬영이 언제 끝나나’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웃음).”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신하균은 가장 먼저 뭘 했을까. 대답은 예상외로 싱거웠다. “집에 돌아가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셨다.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더라. 보통 촬영이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주 시원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다음날 눈을 뜨면 다시 군복을 입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군복 입는 꿈은 꾸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통 군대를 제대한 직후 남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지전’ 촬영을 통해 고스란히 느낀 것이다.
고된 촬영의 연속이었지만 건강은 아주 좋아졌다. 뿌듯한 표정으로 몸 자랑을 하는 신하균을 보노라니 나이를 잊은 귀여움이 보인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산속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아주 건강해졌어요. 얼마 전 체지방을 측정했는데 0%가 나오더라고요, 하하하.”
신하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매우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킬러들의 수다’(2001) ‘박수칠 때 떠나라’(2005) ‘페스티발’(2010) ‘카페느와르’(2010) 등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조차 없이 여러 종류의 작품에 등장했다. 하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신하균 나름의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에 많이 끌립니다. 캐릭터나 영화 형식에 새로움이 있어야 관객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새로움에 끌려 본질적인 것을 놓치면 안 되겠지만 ‘새로움’은 제게 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함께 호흡을 맞춰 보고 싶은 배우 역시 “새로운 배우면 누구든 좋다”고 말했다. “새로운 배우와 함께한다는 흥분감이 있어요. 상대방의 연기를 보고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 연기 호흡을 받아 내 연기로 표현하기도 하죠.”
그는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장르영화가 됐든 무엇이 됐든 완성도 높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끝없이 작품을 해 오고 있고 연기력 또한 인정받고 있지만 그는 “아직 배우라는 타이틀도 벅차다”며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중”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연기와 사랑에 빠진 그에게 연애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계획을 하고 사는 편이 아니에요. 대신 매 순간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해도 상관없어요. 아직까지는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가지 않네요.”
인터뷰 사진=이은지 기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