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햇살이 비추는 한적한 오후 침대 위에서 간지럼 태우기 놀이를 하는 천진난만한 남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화 ‘사라의 열쇠’ 첫 장면이다.
영화는 남매의 해맑은 모습과 웃음소리를 보여 주며 추후 닥칠 비극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이런 소소한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뻐근해 온다.
질스 파겟-브레너 감독의 ‘사라의 열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이 자행했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나치의 지배 아래 프랑스가 자행했던 어두운 과거 역시 들춰내어 전쟁이라는 시대적 비극이 개인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담담히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오늘의 현실은 결코 단절되지 않는 시간 속에 있다는, 역사는 이어진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1942년 평화롭던 한 가정에 들이닥친 프랑스 경찰은 유대인 가족을 체포해 간다. 열 살 소녀 사라는 경찰의 눈을 피해 동생을 벽장에 숨기고 열쇠를 감춘다. 동생에게는 숨바꼭질 하는 것이니 자신이 올 때까지 절대 나와선 안 된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사라는 부모님과 함께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다.
2009년을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인과 결혼한 미국인 기자 줄리아는 유대인 집단 체포사건에 대해 취재하던 중 사라의 흔적을 찾게 된다. 사라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자신과 묘하게 엮여 있는 인연을 발견하고 충격적 사실을 찾아낸다.
‘사라의 열쇠’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열쇠를 지켜야 했던 사라와 미국인 기자 줄리아 사이에 연결된 끈을 따라가며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 간다.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져 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에 긴장감을 더한다.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유대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대외적 현실의 비극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열 살 소녀 사라의 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상처에 시선을 두기 때문이다.
동생을 벽장에 가둬야 했던 누나,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숨바꼭질인 줄 알면서도 본능이 직감한 불길함에 오지 않는 누나를 작은 목소리로 찾는 ‘누나 거기 있어?’. 엄마와 자식을 분리해 가두는 강제수용소에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천륜을 끊어 내기 위해 뿌려대는 호스의 물줄기. 비통한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의 열쇠를 지켜주고자 정신없이 그녀의 행적을 좇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극의 몰입에 한 몫 한다. 12세 소녀 멜루신 메이얀스는 크고 총명한 눈빛을 가진 사라를 완벽히 소화했다. 줄리아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코 토머스 역시 절제된 표현력으로 자칫 감성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캐릭터에 균형감을 잡았다.
영화는 프랑스 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23회 도쿄국제영화제(2010)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으며, 제35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0)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다.
12세 이상 관람가로 오는 8월 11일 국내 개봉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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