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조선 선조 때 도예가 이삼평(李參平)에 의해 생겨난 마을이니 늘 한국에 감사해라,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잘 대접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받았습니다.”
일본 사가현의 아리타 지역에서 카레 전문점 오오타 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오오타 히로미 사장의 말이다. K-POP의 팬이며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다는 오오타 사장은 1개의 본점과 2개의 지점, 또 아리타 역에서 에끼밴(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통해 ‘야끼 카레’를 선보이고 있다. 야끼는 ‘구운’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야끼 카레’는 아리타 지역의 인사들이 고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소개할 만한 지역특산물로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던 중 고안된 아이디어 산품이다. 조선에서 유래된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의 특성을 살려 도자기에 카레라이스를 담아 도시락으로 제공하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야끼 카레’가 대중에게 선보여졌을 때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들은 ‘야끼’의 뜻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구운’ 도자기에 담은 카레라이스이냐, 오븐에 ‘구운’ 카레라이스냐를 두고 고개를 갸우뚱한 것. 정답은 구운 도자기에 담아 오븐에 구운 카레라이스, 일테면 ‘야끼 야끼 카레’인 셈이다.
사가현이 한국과 가까운 3가지 이유
서두가 길었는데 입천장이 데는 것도 모르고 바람에 게 눈 감추듯, 숟가락을 쉬지 못하고 손이 가고 또 가곤했던 카레의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야끼 카레’는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멀리 현해탄 건너 일본인 건 맞지만, 서울에서 제주와 같은 비행시간 1시간만 날아가면 사가현 인근의 후쿠오카 공항이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비교적 짧은 지리적 거리, 조선인 이삼평이 정착하여 도예의 뿌리를 내린 마을이라는 사실은 사가현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 또 하나 사가현이 한국과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자주 한국을 찾는다는 우레시노관광협회 지역발전프로젝트팀의 이케다 에이이치 팀장은 수준급 한국어 구사는 물론이고 우리의 대중가요를 구성지게 부른다. 녹차와 온천으로 유명한 우레시노 시에서 100년 넘게 료칸(전통여관) 와라쿠엔을 운영 중인 시모다 다카요시 사장 또한 한국 손님을 제대로 모시겠다는 생각 아래 한국 직원을 두 명 채용했을 만큼 더 가까워질 한국과의 미래를 꿈꾼다. 아담하고 깨끗한 인상의 온천관광지 타케오 시에 위치한 료칸 타케오온천하이츠의 상무이사 노다 요코 양은 한국의 가요와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데 유창한 한국어 실력보다 놀라운 것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다.
일본 사가현 우레시노의 풍광과 축제
사가현에서 만난 3인의 한국인
사가현에서 만난 세 사람의 한국인은 가깝고도 먼 사가현과의 심리적 거리를 더욱 좁힌다. 료칸 와라쿠엔의 직원 김보라 씨, 사가현 관광연맹의 송준헌 씨, 일본을 기반으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엔타비(Ntabi) 여행사 대표 김윤중 씨다.
#1 김보라 “일본 료칸의 서비스 정신을 체득하고 싶다”
먼저 김보라(24) 씨는 최고의 서비스 정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만나는 료칸’을 설립할 꿈을 안고 일본 현지에서 료칸의 접객 정신과 실제 모두를 몸소 경험하고 있는 당찬 한국 여성이다.
한국항공전문학교 항공운항과를 졸업했으나 스튜디어스가 본인의 자질에 맞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일본 나가사키국제대학 국제관광학과로 유학길에 올랐다. 어렸을 적부터 손님에 대한 극진한 접대에 관심이 많았고, 막연히 관광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해 온 터였다. 마침 항공전문학교에서 가르침을 준 교수가 나가사키국제대학을 추천했고, 필기시험에 응시해 면접을 거쳐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료칸도 졸업 직전 나가사키국제대학의 교수가 “우레시노 와라쿠엔에서 한국인 여직원 구하는데 네가 적격인 것 같다”고 추천해 줘 인연이 닿았다. 놀라운 것은 지난 4월 1일에 입사했는데 7월 1일부로 정직원이 됐다는 사실이다. 시모다 다카요시 사장은 이에 대해 “너무나 성실하고 업무를 빠르게 습득해 정사원 몫을 해내기에 결정을 서둘렀다. 향후 한국 손님이 늘어날 것을 예상해 대비하자는 판단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료칸에서 일하며 배운 것을 묻자 김보라 양은 일본 료칸의 서비스 정신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기 전에 낚아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언제나 밝은 모습, 웃는 얼굴의 이미지도 중요하고요. 제 작은 실수가 료칸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생각 아래 저를 생각하기 전에 료칸을 생각하려는 자세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어 “배우는 중이라 아직은 머나먼 꿈으로밖에 말씀드릴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한 20년 더 배우고 난 뒤 한국에서 만나는 일본 료칸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자연을 느끼며 완전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에 세우고 싶은데요, 제주 출신이라 제주도, 또 전남 담양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라고 희망을 밝혔다.
#2 송준헌 “일본은 저에게 제2의 고향입니다”
송준헌(38) 씨는 사가현에 한국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 애쓰는 사람이다. 김보라 씨가 말하는 ‘자연을 느끼며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일본에서 찾자면 사가현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랄까.
그와 일본의 인연은 도쿄 소재 대학으로의 유학을 준비 중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털 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도쿄에서 적은 돈으로 지낼 수 있는 생활 정보를 묻는 질문을 올렸는데 이 때 답을 준 이가 현재의 부인이고 덕분에 송 씨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쿠오카에 살고 있던 혼전의 부인은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학을 준비하던 송 씨에게 남쪽으로 내려올 것을 권했고, 송 씨는 사랑을 찾아 구루메대 경제학부 진학을 결심한다.
송 씨는 “부친의 연이는 이혼과 세 번의 결혼으로 따뜻한 가족의 품을 느끼기 힘들었었기에 나를 사랑해 주는 여인의 마음이 국경을 넘어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송 씨가 일본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까지 힘이 되어 준 일본인이 또 한 사람 있다. 바로 사가현 관광연맹의 나카시마 아키오 과장이다. 송 씨는 “제게는 정말 아버님 같은 분”이라면서 “직장 부하가 아니라 아들처럼 아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신다. 저도 마음이 편해져서는 아버지에게 투정 부리듯 속 얘기를 털어놓곤 한다”고 상사 자랑을 늘어놨다.
그는 나카시마 과장의 진정 아버지다운 면모를 귀띔했다. 대하기 편한 부하 직원이라면 계속 곁에 두고픈 욕심이 있을 법한데 아직 젊으니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서 일하라며, 우레시노 시청의 공무원 채용 응시를 추천하고 준비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송준헌 씨의 일본 사랑은 그렇게 ‘사람’에서 시작됐다.
“일본이다 한국이다, 일본인이다 한국인이다의 구분보다는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이곳, 부모와 같은 정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이면서도 문화적 풍미를 갖춘 곳이라는 점,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다는 마을이라는 사실도 사가현에 대한 정을 더욱 돋우고요.”
#3 김윤종 “일본은 자연스럽게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왜 하필 일본 전문 여행사였을까. 그렇다고 관광학이나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김윤종(34) 대표는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업을 하셨고, 집에 오실 때마다 사다 주셨던 일본 학용품이며 과자나 초콜릿, 장난감을 쓰고 먹고 놀며 자랐기에 일본은 늘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면서 그렇게 심리적으로 가까웠던 게 배경이 됐다고 설명한다.
또 마음속에 늘 내 손으로 여행사를 경영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일본어는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관광에 대해서는 책과 몸으로 익히는 대신 경영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계획을 세웠다.
뚜렷한 목표와 구체적 계획에 맞춰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준비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관광업에 뛰어들기 위해 여행사에 취직했다. 일본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전문가로 일하기를 5년, 일본 북해도에서 남단 후쿠오카까지 안 가 본 데 없이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일찍 시작해서 남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김 대표는 나이 서른에 엔타비 여행사를 설립했다.
일본 관광에 대한 폭 넓은 지식과 인맥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김 대표의 여행사는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으로 큰 고비를 맞았다. “그날 이후 전화벨이 울리면 ‘아, 취소 전화구나’ 생각할 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뚝 끊겼다”는 김 대표는 “하지만 특정 지역 외의 안전성에 믿음이 점차 확산되고 있고, 여행경기 침체에 맞춰 30% 이상 저렴한 상품들이 제공되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며 미래를 낙관했다.
“실제로 한 달에 1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어요. 하지만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연말까지만 잘 견디면 다시금 우리 한국 분들이 온천에 몸 담그고 믿을 수 있으면서도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 다시 와 줄 것이라고 봅니다. 안 그래도 많이들 찾아 주시니까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소극적이던 일본 현지에서도 지진을 계기로 자신들의 고장을 적극 알리려는 태도를 갖게 돼 좋고요. 위기는 기회라는 말,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