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를 위해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아트센터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후, 1층 카페로 향하던 중 계단으로 내려오는 배우가 보였다. 영화와 무대 위에서만 봤을 뿐,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한 눈에 그녀가 기자가 만날 배우 이엘(본명 김지현)이었음을 알았다. 도도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은 불과 1~2초사이라는 짧은 시간에 상대에게 자신을 충분히 각인시키고 남았다. 물론 이러한 ‘도도’ ‘강렬’이란 단어는 10여분 뒤 마주한 자리에서 무너졌다. 호탕하게 웃으며, 유쾌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연극열전4’의 첫 번째 작품인 ‘리턴 투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고 정해졌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에게 향했다. 영화에서, 연극에서, 그리고 방송에서까지 주가를 올리는 장 감독이 오래 전에 올린 작품을 다시 올린다고 하니, 누군들 관심을 안 갖겠는가. 그러나 공연이 지날수록 관객들의 시선은 장 감독을 떠나, 무대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배우들을 향했다. 중심을 맡고 있는 진우 역의 김원해부터 민 역의 박준서, 서준환은 물론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칼 역의 강유나, 김슬기까지.
그 중 눈길이 가는 인물이 소희 역을 맡은 이엘이다. 이유는 이엘의 활동범위와 이전 작품에서 기인한다. 영화와 방송에서 모습을 비추는 이엘은 2010년 12월에 개봉해 2011년 초까지 개봉되었던 영화 ‘황해’에서 조성하의 내연녀로 출연했다. 과감한 노출이 병행되긴 했지만, 딱 세 컷 만에 관객들은 이엘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 미스터리하고 도도했던 이엘이 무대 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모르면 모를까, 알고나면 ‘반전’의 모습을 보인 그녀에게 눈길이 따라가게 된다.
“영화 ‘황해’와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의 캐릭터하고는 많이 연결해서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공연을 보시고는 ‘어 이 배우가 누구지?’라고 궁금해 찾다가 ‘이 배우가 황해의 그 배우야’라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아요.(웃음) 정말 같은 배우인지 몰랐다고요. 사실 배우인 저한테는 칭찬이고 감사한 부분이죠.”
‘리턴 투 햄릿’에서 이엘을 보고 혹자는 ‘방송과 영화에서 활동하던 배우가 무대로 올라갔다’로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기자도 작품의 선후 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한 채, 그녀와 마주했다. 과거에 무대에 오른 경험은 그저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다니던 대학생의 실습용 정도로만 여겼었다.
“2003년에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그리스’ 앙상블을 했는데, 그게 저의 첫 무대였어요. 이후에 소극장 연극도 하고, 마지막에 무대에 선 것은 2008년 뮤지컬 ‘컴퍼니’였어요. 4년 만에 무대에 돌아온 셈이죠. 무대 작품 이후에는 광고와 영화. 드라마만 했었죠. 사실 전 무대가 편해요. 제가 전방위로 어디로 움직이든 봐주시잖아요.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서서 액션이 들어가면, 서 있으라는 곳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가곤 하죠.”
무대가 편하다는 이엘은, 의외로 무대 위에서의 ‘재미’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느꼈다. 그 느낌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느끼는 재미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엘은 웃음을 내포한 작품이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는 또다른 즐거움도 느끼는 듯 싶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 공연을 많이 봐왔기에 저에 대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여줘요. 하지만 제가 지금껏 (공연을) 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공연은 이것이 처음이에요. 그동안 뮤지컬과 연극을 많이 했지만, 이 작품처럼 몸은 지쳐도 무대에 올라가면 신나던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이 선배는 오늘 나에게 무엇을 줄까 생각하면 신나거든요.”
물론 여기에는 부담도 따른다. 이엘이 맡은 소희는 민을 따라다니는 다소 철없는 여배우다. 그리고 극중극으로 들어가면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햄릿의 사랑 오필리어다. 액자 밖에서도, 액자 안에서도 이엘은 사랑을 주거나 받는 중심에 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무대 자리도 중심에 있다.
“사실 처음 연습할 때는 제 위치가 사이드였어요. 어느 날 연습을 이틀 빠지고 왔더니, 사이드가 아니라 센터로 옮기신 거예요. 그때부터 부담이 백만 배인 거예요.(웃음) 사이드에서는 제가 잘 안 보이는데, 센터에서는 가볍게 눈만 돌려도 1열과 2열 관객들은 제 시선을 그대로 따라온다는 것이 보여요.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부담은 또다른 곳에서 더해졌다. 소희라는 인물이 이엘의 성격과는 많은 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배우라면 어떤 역이 주어지든 몰입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어야 하지만, 애초부터 자신의 성격과 유사하면 유리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이엘과 소희는 분명 성격 차이가 존재했다.
“사실 소희와 제 평소 성격은 다른데, 이것을 연기해야 하니까 부담됐죠. 소희는 순진하고 순수하고 모든 포커스가 민에게 맞춰져 있잖아요. 또 여기 저기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고, 엉뚱하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이 달라요. 저는 평소에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고, 뭔가 다른 사람들이 시끄러워지면 마지막에 정리해주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소희는 모든 것에 궁금해 하면서 이야기꺼리를 계속 만들어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연습할 때 굉장히 힘들었죠.”
이엘 “죽어야 하는 비극은 그만…즐길 수 있는 연극에 감사”②에 이어짐.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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