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이엘 “죽어야 하는 비극은 그만…즐길 수 있는 연극에 감사”②

[쿠키人터뷰] 이엘 “죽어야 하는 비극은 그만…즐길 수 있는 연극에 감사”②

기사승인 2012-02-21 09:52:00

"‘리턴 투 햄릿’ 이엘 “‘황해’에서의 제가 연상되세요?”①에 이어서

[인터뷰] 배우 이엘이 오랜만에 선택한 무대 ‘리턴 투 햄릿’. 이쯤 되면 연극을 연출한 장진 감독과의 인연이 궁금해졌다. 장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어떤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인연을 엮다보면 어떻게든 만나는 지점이야 있겠지만, 이엘의 연극 합류 직전의 만남은 한강 고수부지였다.

“감독님이 2003년인가 저희 학교에 잠깐 강의를 나왔어요. 이후에 8년간 못 보다가 지난해 여름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우연히 본 거에요. 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나온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죠. 처음에는 어색했죠. 세월도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를 단박에 알아보시는 거예요.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한 달이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너 나랑 연극하자’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래’가 아닌 ‘하자’로요.(웃음) 뭐 저는 ‘콜’을 외쳤죠. 배역에 대한 설명도 못 듣고 일단 하기로 하고, 만나서 들었어요. 제가 무대 작업을 안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하고 싶었던 때였기도 했고,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강했거든요.”

8년 만에 만난 장 감독의 작품. dl엘에게는 4년 만의 무대 작품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엘이 맡은 배역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과 실제 이엘이 연기하는 무대 위 캐릭터의 충돌이 흥미로웠다. 극중극에서 이엘이 맡은 오필리어는 햄릿이라는 작품에서 굉장히 아름답고, 오래오래 기억되지만,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하지만 ‘리턴 투 햄릿’에서의 오필리어는 철이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오필리어다운 오필리어는 적어도 아니다.

“만일 제가 긴 생머리에 예쁜 오필리어를 하라고 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과거 이윤택 선생님이 저한테 ‘넌 남 웃기는 재주는 없어도 울리는 재주는 있다’고 평가를 해주셔서 그런지 알았는데, 요즘은 점점 제 성향이 그것과는 다르게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또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는데, 비극이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해보면 전 항상 비극이었어요. ‘황해’에서도 비극적으로 죽고,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도 피 흘리고 죽고요. 이런 것만 해왔는데, 무대에서까지 눈물짓고 죽어야 했다면, 아마 전 뒤로 넘어갔을 거예요.”(웃음)

그러고 보면 이엘은 ‘리턴 투 햄릿’을 관객과 더불어 즐기고 있었다. 스스로 애드립 욕심까지 내고 있다고 할 정도니, 그가 무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물론 그 애드립이 꼭 성공하지는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 시치미 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엘을 무대에서 봤다면, 그날은 ‘애드립 실패’한 날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사실 제가 무대를 즐기면서 관객들을 웃기거나 한 적은 없어요. 그런 것을 다른 무대에 설 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 작품에서 많이 배웠죠. 관객을 끌고 가면서도, 극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애드립을 하는지도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재미있게 채울 수 있는 말들도 배웠죠. 사실 김원해 선배님이 애드립이 심하세요. 그런데 그게 아무 상관없이 관객들을 웃기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또 하기 전에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검증을 받으시고요. 그런 것을 보면 너무 좋은 거예요. 사실 극과는 상관없이 그냥 관객들을 이 타임에 웃겨야지 하면서 애드립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을 싫어하거든요. 그에 비해 원해 선배님은 애드립을 하는 방법이 너무 우아한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애드립을 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아요. 살짝 빈 틈이 생길 때, 뭔가 떠오르면 1~2초간 눈치를 보다 해요.(웃음) 뭐 반응이 없으면 ‘에이 아니네’라고 하면서 잊어버려요. 그리고 내일은 이렇게 해볼까 생각도 하고요. 관객들 반응이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제가 흐름을 못 탄 것이겠죠.”

흔히 배우들 인터뷰를 하면 ‘나중에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 ‘어떤 작품을 하고 싶냐’ 등의 공식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엘이라는 배우는 이 질문이 인터뷰 도중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엘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한 다음 연기자 생활에 진입한 시기까지의 이야기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림을 하시는데, 그런 외골수 성격을 제가 닮은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미술, 체육, 역사, 국어 이런 과목을 좋아했고, 수학 물리, 이런 것은 싫었어요. 이과적인 머리가 없던 것이죠. 그리고 제가 중고등학교때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도 한명 밖에 없었어요. 스스로 왕따 아닌 왕따였죠.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한 것은 아닌데, 일종의 섬이었죠. 남들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인데, 전 고등학교 때 추억이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부모님이 ‘그럼 네 행동에 책임을 져라’라고 하시더라고요. 18살 때 6월에 자퇴를 했는데, 2개월 공부해서 8월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죠. 책임을 지라고 하셧거, 져야했으니 열심히 공부한 거죠. 그리고 난 후에 한 1년 신나게 놀고, 이후 대입 준비하고 입학했죠. 연기를 하고 싶었고 기획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이곳저곳 소개도 받고 오디션도 봤죠.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연기도 하고, 집에 종종 용돈도 드려요. 제 할 도리는 다 하고 있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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