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이선균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에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가도 언뜻언뜻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드라마 ‘파스타’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작품을 통해 ‘로맨틱 가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체포왕’ ‘옥희의 영화’ ‘파주’ 등 상업영화 독립영화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8일 개봉한 미스터리 영화 ‘화차’(감독 변영주, 제작 영화제작소 보임)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 선영을 찾아 나서는 장문호 역을 맡았다. ‘화차’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을 찾아 나선 문호(이선균)와 종근(조성하)의 이야기를 담는다.
문호는 사촌 형이자 전직 형사인 종근의 도움을 받아 선영을 찾아 나서지만, 알면 알수록 미궁 속에 빠진다. 그녀의 이름과 나이, 가족 등 모든 것이 가짜였고 심지어 살인사건에 얽혀있음이 밝혀진다. 이야기의 흐름은 문호를 따라간다. 그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쫓으며 선영의 상황에 분노, 이해, 연민의 감정을 갖게 한다. 이선균은 문호의 힘겹고 폭발할 듯한 감정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흔들리지 않고 극의 중심을 잡았다.
지난 5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선균을 만났다. 영화 개봉 전 유료 시사회를 통해 관객과 먼저 만난 그는 “90% 넘는 점유율을 자랑했다. 관객의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실제 영화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주말 박스오피스에도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제가 문호라면 절대 선영을 찾지 않을 거예요…”
이선균은 장르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화차’ 시나리오를 만났다. 밝고 가벼운 역할이 아닌 깊은 감정연기에 목말라 있던 때였다. 유난히 감정 신이 많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예민해지고 답답해질 때가 있었지만 그런 ‘힘듦’을 원했기에 오히려 행복했다.
“진심으로 연기하고 울다 보면 예민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점이 마음에 들어 택했기에 오히려 그런 감정을 즐기려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감정 과잉 아닌가’라고 하지만 제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습니다.”
문호는 결혼을 결심할 만큼 선영을 믿고 사랑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배신감과 충격에 망연자실하고 그녀를 꼭 만나 왜 그랬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그 진실을 듣고자 한다. 실제 이선균이라면 어떨까.
“저는 절대 찾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죠.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더 보기 싫을 것 같습니다. 화가 나지만 어딘가에서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말고 살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김민희와 비교? 저는 제 역을 충실히 했을 뿐인데…"
‘화차’ 언론시사회 후 스포트라이트는 김민희에게 집중됐다. ‘김민희를 위한 영화’ ‘김민희의 재발견’이라는 수식어가 늘었다. 함께한 주연배우 이선균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서운함은 없었을까.
“그런 질문 정말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민희가 연기를 잘한 것의 비교 대상이 왜 제가 되는지 의문입니다.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거죠. 민희 역할이 영화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라면 저는 관객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은 튀지 않게 연기를 하는 것이었고 영화를 보고 민희가 측은하게 느껴졌다면 관객이 제 감정에 몰입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연기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그는 김민희가 연기를 잘해줘 영화가 더 주목받게 된 것 같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 3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제가 지금까지 했던 영화 중에 가장 잘 된 것은 210만 관객을 돌파한 ‘쩨쩨한 로맨스’입니다. ‘화차’가 그것보다는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영화가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저희 영화가 그 뒤를 잇기를…”
“한 작품 끝나면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죠”
배우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인물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그 캐릭터에 몰입하다보면 작품이 끝나고도 그 인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선균은 그 방법의 하나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캐릭터가 가진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 하는 작품마다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긴 시간이 걸리기에 ‘끝났다’라는 느낌이 확 들지는 않지만 한 작품을 마치고 나면 마치 시험을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는데 주로 파마를 합니다. 그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파격 변화를 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거든요. 특히 쫑파티 때 변신을 하고 나타나 배우, 스태프들을 ‘짠~’하고 놀라게 하곤 합니다(웃음).”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것 외에도 ‘여행’을 꼽았다. 아직은 두 아이가 어려 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했다.
“태국과 동남아에 가서 따뜻함을 즐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 안고 다니지 않고 손을 잡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혼자서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웃음).”
“‘좋게 나이 드는 것 같다’는 문자에 감동 받았죠”
영화의 VIP 시사회가 끝나고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친한 감독이 보낸 ‘네가 좋게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 좋다’는 문자였다. 이선균은 당시를 회상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문자를 받는 순간 그 어떤 칭찬을 받는 것보다도 기뻤습니다. 사실 지금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부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40대를 배우로 살아가려면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요즘에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넘쳐나서 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무리 중 한명이 되고 싶고 제 나이대에 맞는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