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사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물보다 진한 것은 피다. 하지만 피보다 진한 것이 ‘인습’이 되어야 할까. 영화 ‘그녀가 떠날 때’는 독일 터키계의 명예살인을 다루며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처참히 파멸해 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독일의 터키 가정에서 태어나 서구 문화를 접하며 자란 우마이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과 이해 속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이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스탄불에서 가정을 꾸린 그는 폭력을 서슴지 않는 남편을 피해 아들과 고향 독일로 도망 온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이 정해 놓은 전통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가족들은 따스한 위로는커녕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우마이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급기야 우마이와 그의 아들 쳄을 다시 이스탄불로 보내려고 하고, 우마이는 가족을 떠나 집을 나오지만 더 비극적인 운명이 기다릴 뿐이다.
영화는 두 문화의 차이가 빚어내는 문화의 충돌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삶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묵묵히 바라본다. 가부장적 관습의 굴레 속에서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우마이의 절망과 고통을, 딸을 사랑하지만 전통적 가치관 사이에서 깊이 갈등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늘 자신을 돌봐준 누나의 편이 돼주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커뮤니티의 문화 속에 흡수돼 버린 남동생까지 각자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상황적 비극이 주는 슬픔을 묵도한다.
인물들이 겪는 비극적 갈등과 고통을 소리치지 않는다. 침묵을 적절히 사용해 묵직한 슬픔과 비통한 떨림을 전할 뿐이다. 우아미는 아버지와의 싸움 중 칼을 들고 위협하다가 결국 자신의 팔을 베고 오열한다. 이 장면을 통해 그동안 감정을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아 왔는지, 그 고통의 밀도를 깊이 있게 전하며 관객을 함께 아파하게 한다. 특히 영화의 끝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기 힘들 만큼 충격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페오 알라다그 감독의 작품으로 2010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유럽영화상을 받았으며 2011 독일비평가협회상에서 최우수신인감독상,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국내 개봉은 오는 3월 29일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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