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5살 때인 1994년,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무려 19년차 연기자가 된 배우 김소연은 영화 데뷔 역시 빨랐다. 풋풋한 18살 고등학생 때 ‘체인지’(1997)를 통해, 뻔뻔하면서도 능숙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충무로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기대주는 ‘체인지’이후 스크린에서 보이지 않았고, 차기 영화를 고르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2005년에 잠시 서극 감독의 중국영화 ‘칠검’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국내 영화 복귀를 결정하기까지의 호흡은 너무나 길었다.
대중들은 연기 경력 19년에 영화가 겨우 두 편이라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그가 늘 영화와 함께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우아한 드레스를 선보이며, 화제의 인물로 종종 등극했기 때문이다. 성격 좋고 착한 배우로 유명한 김소연은 이런 사실에 “큰 부담이었고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영화요? 일부러 안한 거 아녜요, 늘 간절히 꿈꿔왔어요”
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연은 영화에 대한 갈증이 지속된 것은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15년 만에 선택한 두 번째 영화인 ‘가비’는 자신에게 행운으로 다가온 작품이라고 감사해했다.
“영화 ‘체인지’ 이후 들어온 배역들은 노출이 많고 과감한 자극적인 것들이었어요. 보기에는 성숙해 보였어도 당시 나이도 어렸고 그런 것에 대한 준비가 안돼있었죠. 어린 마음에 ‘영화는 내가 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됐을 때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왔어요. 간혹 들어오면 공포영화 같은 것이었는데 어른이 돼 처음으로 찍는 영화였기에 다른 장르를 택하고 싶어 기다리다 보니 공백기가 길어졌습니다.”
김소연은 ‘가비’가 아니었다면, 스크린 복귀가 더 길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애초 ‘가비’의 여주인공은 이다해로 캐스팅됐지만 영화 촬영 지연 등 여러 사정으로 그 자리를 김소연이 차지하게 됐다.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역이었는데 제게 오게 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1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게 되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배우의 얼굴에는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얼굴에서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꿈꿉니다.”
지난 15일에 개봉한 ‘가비’는 커피의 영어발음을 따서 부른 고어로 김탁환 작가의 소설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한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아관파천 시기인 1896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사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커피와 고종을 둘러싼 음모와 비밀을 담아낸다. 김소연은 극중 고종 암살의 열쇠를 지닌 인물 따냐를 연기했다.
“‘가비’ 연기 못 한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울었어요”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까. 그는 ‘가비’를 촬영하며 뜻대로 연기가 되지 않아 참 많이 울었다. 스스로를 ‘자책의 아이콘’이라 칭하는 그는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감독님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싫고 스태프, 감독님에게 미안하고 괴로워서 많이 울었습니다. 눈뜨는 것, 걸어가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들어 여러 차례 다시 촬영했습니다. 평소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인데 촬영장에서만큼은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화란 것이 한번 촬영하고 나면 계속 남는 것이기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찍으며 커피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믹스커피 외에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지만 ‘가비’를 통해 커피를 배우며 커피의 참맛과 향을 알게 됐다. 또 상대배우 주진모와 함께
(사)한국커피협회의 명예 바리스타로 위촉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아메리카노 같은 쓴 커피를 왜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예전에 피렌체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고 고생한 기억이 있어 더욱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저 모양새로만 따라놓고 셀카를 찍는 정도였죠(웃음).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변했습니다. 지금은 느끼한 것을 먹고 난 후에는 에스프레소를 찾게 되죠. 제게는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커피를 대하는 마음만 ‘어마어마하게’ 변한 것이 아니다. 오랜만의 찍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은 김소연을 파격적인 변신으로 이끌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코너 ‘꺽기도’에 나와 숨겨진 예능감을 선보인 것이다. 방송 직후 김소연의 지인들 뿐 아니라, 시청자들조차 이 아름다운 여배우의 ‘망가짐’(?)에 놀라고, 웃었다. 그러나 김소연은 도리어 ‘꺽기도’를 통해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개그프로그램, 이젠 절대 누워서 안 볼 거예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잘했다람쥐~’ ‘재밌다니까불이~’ 등 문자가 23개가 왔어요. 보통 작품 끝나고도 그 정도의 문자를 받은 적이 없는데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죠. 일요일 저녁에 저 때문에 많은 분들이 웃으셨다고 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토크에는 약한데 슬랩스틱 코미디 쪽은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개그맨분들이 준비해 주신 것에 숟가락만 올려놓은 건데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그분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개그맨 분들은 더 빛을 봐야 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편한 자세로 개그 프로그램을 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정자세로 바르게 앉아 즐길 겁니다(웃음).”
여배우로서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망가지는 것과 악플에 더욱 강해졌다”며 웃어 보였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인터넷으로 댓글을 봤어요. 100개의 댓글 중 3개 정도는 ‘왜 이렇게 망가졌느냐’ ‘오그라들어서 못 보겠다’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예전의 저였다면 97개의 칭찬은 넘겨버리고 나쁜 글 3개에 대해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어요. 나쁜 것은 쉽게 버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죠. 그런 여유가 조금 더 저를 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음. 댓글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신인 개그맨인 줄 알았는데 김소연이었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개그맨분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뻤습니다.”
“천의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고, 예능감까지 폭발하며 의외의 모습을 선보인 김소연. 그런 그가 꿈꾸는 것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특히 다양한 목소리를 갖고 그에 맞는 역에 적절히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목소리가 바뀌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훈련을 통해 여러 가지의 목소리를 갖고 싶습니다. 배역마다 마치 빙의 된 듯한 여러 목소리를 내는 것이죠. 특히 처음과 끝의 캐릭터 변화가 큰 역을 맡아 확 달라진 사람의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또 메릴스트립처럼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배우, 아름답고 우아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또 그는 매일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 바뀌지만 요즘에는 ‘이유 있는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함께 연기하고픈 배우로는 유아인을 꼽았다.
“요즘 연하남들과의 호흡이 대세인 것 같아요. ‘해를 품은 달’에서 보니 김수현 씨도 연기를 정말 잘하시고, 송중기, 유아인 씨 등 훌륭한 배우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한다면 유아인 씨와 연상연하의 아슬아슬하고 날이 선 느낌의 치명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