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 ‘돈의 맛’ 임상수 “특정 재벌 겨냥? 제작비 구하느라 힘들었다”

[칸국제영화제] ‘돈의 맛’ 임상수 “특정 재벌 겨냥? 제작비 구하느라 힘들었다”

기사승인 2012-05-25 04:01:00

[쿠키 영화] 24일 오전 11시(프랑스 현지시간) 제65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니스 해변에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임상수 감독을 만났다.

영화 ‘돈의 맛’에서 보여지는 백 회장 일가의 이야기가 유럽인들도 다 아는 특정 재벌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에서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되나요?”라고 반문한 후 “순위에 따라 5개, 20개 정도 될 텐데 최고의 재벌이 덤터기 써서 욕먹는 것일 뿐이다. 보다 크게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어 “평범한 소시민 주영작(김강우)의 일상까지 힘들게 하는 재벌들의 실상, 그러나 실은 얼마나 지질하고 불행한가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임상수가 영작이다. 극중에서 윤 회장(백윤식)이 말하듯 직쟁 생활 10년차면 현장에서 구르며 진짜 일을 하게 해야 하는데 모욕을 주면서 (검은돈 세탁이며 일상적 뒤치다꺼리 같은) 엉뚱한 일을 시키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영작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영화에 대한 공감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칸 현지에 공개된 영문과 불문으로 된 ‘돈의 맛’ 소개 글을 언급하며 “브러셔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대선(글을 쓸 당시에는 좌파 정권의 승리라는 대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과 이탈리아 상황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이명박은 (이탈리아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같은 사람이다. 자신이 부자이고, 국민들도 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됐지만 친구들만 부자가 됐지 일반 사람들로서는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세졌다”고 소개한 뒤 “유럽인들은 이런 영화를 찍으면서 어떻게 돈을 마련했을까 궁금해 한다. 그래서 나 또한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은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더 조그맣고 몇 줌의 재벌들이 쥐고 있는 나라인데 그 틈바구니에서 돈을 구해 이런 영화를 찍기는 기적 같은 일이다”라고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전했다.

그는 계속해서 “영화 ‘하녀’가 관객 230만의 흥행을 했다. ‘하녀’보다 섹스도 많고 현금도 많이 등장하는데 투자사들로부터 다 거절당했다. 제작사 시너지의 사장이 용기를 낸 것이다. 영화를 크랭크인 할 때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재벌 영화 그만 찍겠습니다, 이것만 하고 그만하겠습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하며 제작비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벌의 속내를 보여 주는 영화를 끝까지 고집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출의도를 밝혔다. “재벌을 씹는 게 대세인데 나는 그것보다 대중이 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재벌들에 대해 날카롭게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토양이 무르익어야 관련 정책도, 정책 입안자들도 재벌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임 감독은 자신의 이러한 의견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듯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 벌이는 일에 대한 분노, 그 아래서 고통 받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 이것을 말하자는 영화가 아니다. 이런 걸로는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주제가 이거다 식으로 하나를 붙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독립영화 좌파들은 그렇게 (주제의식을 견지하고) 찍을 수 있는 거지만, 예술작품이 되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된다. 그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재벌에 대해 모욕을 주는 것이지만, 줬다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을 내 의도대로 끌고 오는 건 지양해야 한다. 재벌 비판만이 목적인 게 아니라 ‘있는 것들도 저렇게 불행하게 사네’라고 느꼈으면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벌 비판에 관한 영화의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에 관련해 말한 것 중) 끝으로 “돈을 못 벌어 주는 감독인데 어렵사리 투자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영화가 천만 관객으로 돈 벌 때 나나 홍상수 감독도 찍을 수 있는 것”이라며 “솔직히 나는 홍상수 감독에 비해 돈 욕심이 있다. 내가 돈 벌어 개런티 주면 받은 배우들은 홍 감독에게 가서 편히 연기할 수 있는 흐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다.

임 감독은 웃음 끝에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돈(제작비) 못 구해 힘든 상황에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시사에 오라는 문자를 받았단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이라고 생각했다가 생각을 바꿔 경기도 일산 끝에서 몇 만원의 택시비를 주고 시사회가 열린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 갔다. “나의 복잡한, 돈의 모욕에 얽혀 있는 상황이었는데 ‘북촌방향’을 보니 사람이 담담해지면서 맑은 기운을 주더라. 이런 맛이 있구나. 홍상수 영화의 힘을 처음으로 알았다. 칸도 그걸 알아 (홍상수 감독을) 초청한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에서 똘똘한 두 중년감독이 칸에 왔다. 빈손으로 갈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수상 못해도 상관없다. 계속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있다면 열심히 좋은 영화 만들다 보면 또 올 수 있고 수상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여유 있는 관용적 태도를 보였다.

27일 폐막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한국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한다.

칸(프랑스)=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