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 ‘다른 나라에서’ 유준상 “내가 홍상수 영화를 계속하는 이유…”

[칸국제영화제] ‘다른 나라에서’ 유준상 “내가 홍상수 영화를 계속하는 이유…”

기사승인 2012-05-26 14:52:00

“20년 배우일지, 최민식 선배의 힐링캠프 스승 안민수 교수의 가르침”

[쿠키 영화]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른 나라에서’의 레드카펫과 스크리닝 일정을 소화하고 23일(프랑스 현지시간) 출국한다던 배우 유준상이 27일 폐막을 하루 앞둔 현재도 칸에 머물고 있다. 유준상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작가님을 비롯해 제작진,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께서 ‘기왕 간 거 제대로 잘하고 오라’고 배려해 주신 덕분이다. 쉬운 일이 아닌데 너무나 감사하다”며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4일 오후 홍상수 감독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제작진과 함께 묶고 있는 르 플뢰르 레지던스 로비에서 배우 유준상을 만났다. 그의 손에는 얼마 전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20년째 써 오고 있다는 배우일지가 손에 들려 있었다. 제법 묵직한 두께의, 별다른 장식이 없는 두꺼운 책처럼 보이는 다이어리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5월말임에도 두께의 반을 훌쩍 넘긴 손때, “올해는 여행이 많아 적을 게 많았다. 평소에 잘 적지 못하다가 여행을 하면 생각들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배우일지의 시작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동국대 스승이신 안민수 교수님께서 배우는 자신의 일지를 써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최민식 선배님이 TV에 나가 ‘힐링캠프’에서 찾았던 바로 그 스승님이다.” 제자들의 연기지도에 매우 엄격했다는 안 교수의 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긴 제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책을 낳게 했고, 그 수익금은 선행에 쓰이며 감동을 확산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 유준상은 홍상수 감독과 한 방을 쓰고 있노라고 했다. 세계적 감독과 ‘국민남편’이 한 방을 쓰는 일, 보통의 감독과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비용 문제도 있지만, 아니 비용 없는 게 커서지만 그것만으로는 같은 방 쓰기 힘들다. 하지만 감독님과 저는 사이클이 맞다할까. 감독님이 대본에 그려 놓으시는 사람 그림과 나의 일지 속 사람 그림이 거의 비슷하다. 또 코도 안 고셔서(함께 자는 게 가능하다), 되레 제 매니저가 코를 곯아 혼자 잔다(웃음),”

‘하하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북촌방향’에 이어 네 번째 영화를 함께하도록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홍 감독은 나의 라이트 하우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서’ 유준상이 연기한 영어를 잘 못하는 안전요원이 한국을 찾은 안느(이자벨 위뻬르)에게 등대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 표현한 아주 정직한(?) 발음 그대로 말했다. 홍상수는 내 인생의 지표를 밝히는 등대라는 말로도 들리고, 빛의 원천이라는 의미로도 읽히는 표현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답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요. 감독님은 마치 그 답을 영화를 통해 제게 주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옆에 있을 때 쉽게 말로 몇 마디 해 주시는 대신 영화로 보여 주시는 느낌이라할까요. 훨씬 강렬할 수밖에 없죠. 일테면 이런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하지 말라고. 아우, 뒤통수를 한 대 탁 맞은 기분이었어요,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그날 일지에 적었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면서 살지 말자고요. 또 ‘다른 나라에서’도 그래요, 스님이 안느에게 묻잖아요, 너는 어릴 때랑 지금이랑 같냐고요. 영화 보면서 순간 머뭇 고민하다 마음속으로 외쳤죠. 네, 안 변했어요! 사실 제게는 늘 소년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소년을 유지할까, 그런 제 고민에 대해 영화로 답을 주신 것 같아 순간 눈물이 울컥했어요.”

영화 ‘다른 나라에서’에는 텐트가 나오고 기타가 나오고 야외용 작은 전등 랜턴이 나온다. 안전요원은 텐트에서 살고, 기타를 치며 즉석에서 안느에 대한 호감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불러 주고, 등대를 찾지 못한 안느에게 랜턴을 가르키며 ‘라이트 하우스’라고 말한다.

“칸에서의 공식상영 때 안전요원의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감동적이었죠. 지난해 5월 촬영지인 전북 부안의 모항으로 출발하면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감독님, 텐트 가져갈까요? 그래도 바닷간데 기타 한 번 쳐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좀 생각하시다가 어, 그래 가져와라 하시더라고요. 랜턴은 출발 직전에 짐칸이 꽉 차서 실을까 말까 하다가 부피도 작으니 넣고 가자 했던 거예요.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 그렇게 살아났네요. (허허허 짐짓 헛웃음을 먼저 지은 후) 제가 그것들을 안 가져갔으면 영화에는 그런 장면들이 없었을 거고 그럼 박수도… 농담이고요. 감독님이 허락하셨으니까 가져간 거죠. 필요 없다 생각하셨으면 가져오지 마라, 하실 분이에요.”

“모든 걸 알고 시작해 모든 걸 통제하며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순간과 처해 있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그것을 (영화에) 넣으면 전체에 섞이고 그러면서 전체의 모습에 변화가 오고, 다음날 또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넣으면 전체에 섞이고 또 전체의 모습이 조금 변화되고 하는 과정을 거쳐 영화의 만들어간다”고 말하는 홍상수 감독. 그런 감독이 대본을 쓰며 태우는 아침 담배연기에 잠을 깨는 일이 즐겁고 ‘내 인생의 등대는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다는 배우 유준상. 그런 유준상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느끼는 게 좋고 영화의 바탕이나 스토리에 영향을 받는 게 좋다는 홍 감독. 자연스러움, 어울림.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단어다.

흔하지 않은 감독과 배우의 하모니가 잘 녹아 있는 ‘다른 나라에서’가 27일 폐막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칸(프랑스)=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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