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人터뷰] 장동건 “나의 마지막 로맨스 연기였죠”

[Ki-Z 人터뷰] 장동건 “나의 마지막 로맨스 연기였죠”

기사승인 2012-09-08 13:32:01

[인터뷰] 이틀을 몸 져 누워 있었다. 드라마 종영 후 촬영차 찾은 미국에서는 김민종, 김수로와 이틀을 함께 보냈다. “드라마에서처럼 배우들과 절친이 됐다”고 했다. 고민 끝에 12년 만에 출연했던 드라마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던 무게감을 털어버리고자 선택한 작품이었다.

“어딜 가나 환호해주시고 손짓 하나에 열광해주시는 모습은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딱딱한 이미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거나 사인을 요청하기보다는 항상 머뭇머뭇하셨는데, 지금은 선뜻 다가오시면서 함께 사진 찍자고 하세요. 감사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배우 장동건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신사의 품격’의 여파를 실감하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명동 카페의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모두들 휴대전화를 들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그를 담기에 바빴다. 90년대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마지막 승부’ 등을 통해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던 그이지만, 마흔이 넘어 이렇게 열광적인 팬들의 환호를 들을 줄은 몰랐다. 드라마의 힘이다.

“드라마를 일부러 안했던 적은 없었어요. 잊고 있었다는 것이 맞을 거예요.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면서 시청자의 즉각적인 반응이 새롭게 다가왔죠. 예전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더 빨라진 것 같아요. 드라마의 새로운 재미와 매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신사의 품격’은 사랑과 이별, 성공과 좌절을 경험하며 불혹(不惑)을 넘긴 꽃중년 남자 4명이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 방송 전부터 ‘신사의 품격’은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미다스 손’인 ‘시청률 보증수표’ 김은숙 작와 신우철 PD가 다시 한 번 신화를 창조할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장동건은 독설이 특기인 건축사 김도진 역을 맡아 서이수(김하늘)과 달콤 쌉사름한 사랑을 그려냈다. 지난 2000년 채림, 김소연과 함께 출연한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이후 12년 만의 안방 복귀다.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죠.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는 말이 정답일 거예요. 그런 역을 해보지도 않았고, 너무 어려웠죠. 캐릭터를 잡는 데에는 남자 넷이 함께 하는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됐고, 일정 수준 넘어서서 망가져야 하는 부분도 많이 의지가 됐어요. 우리 커플은 연애의 유치함, 오글거림이 많았거든요.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망가진 것 같지만, 연애의 소소한 면을 그렸다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 이상의 의미로 남았습니다.”

그간 영화에서 무겁고 진중한 캐릭터를 선보여온 장동건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로코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데에 큰 의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겐 로맨스도 코미디도 어색했지만, 어느 덧 스스로 연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느끼하고도 야한 대사는 물론, 춤까지 소화했다.

“오글거림은 정말 죽겠더라고요. 하지만 여자들의 심리를 많이 배웠죠.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백허그’에 여자들이 그리 집착한다는 걸 알게 됐고.(웃음) 오글거리는 유치함이 실제 연애할 때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런 판타지를 제공함으로써 여자 입장에서는 ‘내 남친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주신 것 같아요.”

반듯하고 선한 이미지, 혹은 강인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공존하는 그에게 이번 작품은 큰 도전이었다. 그는 “옴므파탈 연기를 하고 싶었다. 나쁜 남자의 매력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 보여드린 것 같다”라며 “마흔이 됐을 때, 원숙미가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를 그려내면 좋겠다 했는데 작품을 잘 만난 것 같다”고 했다.

“극중 도진 캐릭터와는 닮은 점보다는 다른 부분이 훨씬 더 많았어요. 직설적이고 까칠하고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저에게 없는 부분이죠. 주위 분들은 도진의 장난기 같은 모습은 저와 비슷하다고 해요. 저를 제외한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 씨 등 나머지 3명은 다 실제로 비슷해요. 싱크로율은 이종혁 씨가 가장 높고요. 계속 무게 잡는 역을 맡았는데, 자기 옷을 제대로 입은 것 같아요. 김하늘 씨는 로코 연기를 너무너무 잘해요. 초반에는 의지를 많이 해야했죠.”

‘하는 걸로~’라는 대사로 이른바 ‘걸로체’를 유행시킨 그는 “감독님의 말투를 작가님이 대본에 잘 살려내셨더라”라며 “데뷔 이래 첫 유행어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10여년 사이 드라마 시스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스피디한 촬영 그리고 현장에서 바뀌기 쉬운 돌발 변수는 사실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장동건이 가장 변화를 실감한 것은 ‘HD 화면’이다. 천하의 장동건도 화면의 선명도가 월등히 향상된 HD 화면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첫 회 나가는 것보고 깜짝 놀랐어요. 다른 배우들이 HD 화면으로 처음 보면 충격 받을 거라 했는데, 속으로는 ‘어디 가겠어?’하며 내심 신경 안 썼거든요. 첫 방송 보고 적잖이 당황했고, 잠을 못자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도 아쉬웠죠.”

장동건은 작품을 택하는 기준을 ‘결핍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아쉬움 면은 그 다음 작품으로 채운다. 스스로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낳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영화 ‘친구’가 800만 명의 관객수를 넘겼을 때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도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즐기려고 한다.

“어렸을 때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고민이 있었어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에서 연극과를 선택하기도 했었고요. 제가 데뷔부터 화려하게 시작해 꾸준히 지금까지 잘 활동해온 것 같지만, 사실 초반에는 영화 실패도 많이 하면서 고민이 쌓여 있었어요. ‘내가 영화를 말아먹고도 계속 연기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죠. 20년 간 좌절없이, 실패없이 활동해온 것 같지만 굴곡이 많았어요. 한 때는 아무런 고민이 없어서 고민을 했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요. 사실은, 지금도 ‘다음’이 고민이에요. 어떤 작품을 해야할까 하는 고민은 배우로서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겠죠.”

아내인 고소영은 남편의 활약에 가장 큰 응원을 보냈다. 본인도 배우이기 때문에 복귀작에 대해서는 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현실적으로 육아에 집중하느라 당장은 어렵겠지만, 지금도 꾸준히 마음은 있는 것 같다”라며 “텀이 길어지면 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당하게 찾는 중”이라고 전했다.

드라마를 하면서 “더 젊었을 때 로코를 찍어 놓을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는 장동건은 “한편으로는 지금이라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30대 ‘로코’를 했다면 이번처럼 내려놓지 못했겠죠. 예전에는 큰 감정 연기하는 게 좋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좋았어요. 일상적인 것, 작은 것을 재밌게 표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신사의 품격’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생각해요. 상상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이 많이 나왔고, 이게 나의 마지막 로맨스 연기가 아닐까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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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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