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연극 ‘거기’, 맥주처럼 톡 쏘고 소주처럼 씁쓸한 그들의 이야기

[Ki-Z 공연] 연극 ‘거기’, 맥주처럼 톡 쏘고 소주처럼 씁쓸한 그들의 이야기

기사승인 2012-09-15 13:18:00

[쿠키 문화] “증말 잘 오신 거래요.” “이 동네, 여름만 좋은 게 아니래요. 살아보면 알 거래요.”

한적한 강원도 시골 마을의 한 주점이 웬일로 북적인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이따금씩 들려 맥주로 한 모금 축이는 이 주점에 모처럼 밤늦게 손님들이 찾아온다. 강릉 아래, 부채 끝처럼 생겨 ‘부채끝’인 작은 마을. 조용하던 일상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작됐지만 이날 주점에 모인 사람들은 남다른 사연을 갖고 방문한다.

서울에서 이사 온 사연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오자 마을 노총각들은 기뻐하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들은 각각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술과 함께 깊어가는 그날 밤의 이야기는 맥주처럼 톡 쏘고 소주처럼 씁쓸했으며 와인처럼 달콤했다. 그들은 일상처럼 ‘거기’에 모여 있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시작되는 연극 ‘거기’는 향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알고보면 코너 맥퍼슨의 ‘The weir’를 한국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최고 흥행작으로 떠오르며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극단 차이무가 번안해 2002년 초연됐는데,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2002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우수공연 베스트7’에 선정됐고 2004년에는 서울 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6년 만에 이상우 연출이 다시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오른 ‘거기’는 더 깊어진 연출력과 원숙한 연기력으로 무장했다. ‘거기’는 타인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또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강원도 사투리를 통해 독특한 정서를 향유하고, 누구나 겪으며 겪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그려낸다.

연극은 주점에서 네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젊은 여자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낯선 여자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돌고,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동네 노총각들의 귀신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을 두들겨대는 귀신, 계단에 앉아 있던 귀신이 등장하지만 여자는 무서워하기는커녕 흥미롭게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여자는 남자들의 귀신이야기를 이어받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딸의 이야기를 꺼낸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 법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한다. 술자리에서 흔히 있을 법한 귀신 이야기이지만, 어느 덧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를 하게 되는 도구로 탈바꿈한다.

어느덧 관객 또한 상처와 치유, 소통 및 위안과 마주하게 되는데, 극적인 설정이나 과도한 사건이 없어도 그 힘은 꽤 크게 다가온다. 무대 변화나 장면 전환도 없지만 소소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그 생명력을 놓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이어져 완성도를 높인다. 뛰어난 리얼리티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데, 스토리텔링이나 서사가 아닌 어떠한 정서로 몰입을 이끌어낸다.


각박한 세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의 감정들을 끄집어냈다가 극복과 치유를 통해 어느 덧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은 감정을 공유하고 빠져들게 된다.

배우들의 호연도 완성도를 높인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는 강신일과 이성민 그리고 김승욱, 이대연, 김중기, 민복기, 정석용, 오용, 송재룡, 진선규, 김소진, 오유진, 김훈만 등 연기파 배우들이 뭉쳤다.

제목이 원작처럼 ‘방죽’이 아닌 ‘거기’가 된 까닭은 고향이라는 정겨운 설정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이상우 씨는 “고향 친구들을 만날 때 ‘야, 거기 우리 만날 가던 거기 있잖아’라고 얘기를 하면 다 알아듣는다. ‘거기’라는 단어에는 그런 막연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가 배경이 된 이유는 사투리가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한편, 연극 ‘거기’는 오는 11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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