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부정(父情)은 통했다. 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의무와 역할은 수없이도 많지만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이 시대 우리의 아버지들.
시청률 30%를 넘긴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가슴 찡한 가족의 이야기다. 특히 주로 모성을 다뤘던 기존의 드라마들과 달리 부정을 조명했고, 얽히고설킨 가족들의 사연들로 드라마는 꽉 채워진다.
극중 서영(이보영)의 이란성 쌍둥이인 의대생 상우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배우 박해진(29)은 극의 중심을 이끌며 ‘재발견’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작품에 녹아난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솔직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시청률이 빨리 나왔다”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 “앞으로 40%를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욕심을 드러내 보였다.
지난 2년여간 박해진은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고, 여느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오며 신(新) 한류스타로 떠오른 바 있다. 이번 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친정인 KBS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소문난 칠공주’를 비롯 ‘하늘만큼 땅만큼’, ‘열혈장사꾼’ 등에 출연하며 유독 KBS와 인연이 깊었던 그는 “KBS 주말극이라는 것에 의미가 컸다.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3년 만이라, 첫 촬영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어색할 것 같았는데, 웬걸. 예전에 출연했던 드라마의 스태프들이 거의 그대로인 겁니다. 바로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편하게 대해주셔서 공백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예요.”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과 빠른 스토리 전개는 ‘내 딸 서영이’의 몰입 및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극적 장치들을 군데군데 심어 놓으며 긴장을 이끌어가고, 거듭되는 러브스토리가 궁금증을 유발하며 비밀스러운 관계 또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딸 서영이’는 부녀의 이야기가 극의 중심에 서 있다. 무능하고 못난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불행 때문에 부녀의 연을 스스로 끊어버린 서영(이보영)과 자식에게 최고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 딸의 독기까지 감싸 안은 아버지(천호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된다.
“대부분 엄마 이야기라면 뭉클한 마음이 먼저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달라요. 거리가 있고 다소 어려운, 큰 산 같은 존재죠. 이 시대 아버지의 현주소랄까요. 현실을 오롯이 담아낸 것이 인기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박해진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남자의 삶을 부모의 삶을 그리고 자식의 삶을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이특, 희철과 동갑인 29살의 청년임에도 실제 나이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다른 집안 환경으로 일찍 철이 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집안이 화목하지 못했는데, 그럴수록 저는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도 가족 욕하는 것이 싫었죠. 방황도 해봤지만 해결해주진 않더군요. 경상도 남자라 특유의 무뚝뚝함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가족끼리 있을 때도 세 번 이상 대화를 하는 일이 없어요. ‘밥은?’ ‘애들은?’ ‘스케쥴은?’ 이 정도가 다예요.(웃음)”
요즘 연예인들이 즐겨하는 그 흔한 SNS도 해본 적이 없고, 사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 활동적이지 못하다. 스스로 “닫혀 있는 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친구들은 ‘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다 해도 크게 불편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번호를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만큼 아는 사람의 연락처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자녀가 없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정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하며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그는 “조카가 생기다보니 ‘뭔들 못 해주겠어’ 하는 생각도 든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어떤 건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라며 “조카인데도 이 정도인데, 내 자식이면 더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극중 아버지로 출연하는 천호진은 박해진의 연기에 큰 귀감을 주기도 한다. 이보영 또한 서로 대화를 통해 연기를 맞춰가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보다 늘 많은 준비가 돼 있어 놀랄 때가 많단다.
“천호진 선배님이 계란말이를 먹으면서 울음을 삼키시는 장면이 있었어요. 대본을 보고 어떻게 표현하실까 참 궁금했죠.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었어요. 슬픈 연기는 두 가지가 있어요. 내가 정말 스스로 슬프던가, 아니면 남들로 하여금 슬퍼 보이는 것. 그런데 천호진 선배님은 둘 다였죠. 울음 덩어리를 같이 삼키는 그 모습은 정말 삼재 그 자체였죠. 소름끼치게 슬펐어요.”
아버지 앞에서는 믿음직하고 유쾌한 아들이며 자신을 짝사랑하는 호정(최윤영)에게는 차갑고 냉정한 남자이고 사랑하는 연인 미경(박정아) 앞에서는 다정다감한 사람이 된다. 또한 인연을 끊고 떠나버린 누나한테는 쌀쌀맞은 동생이 된다.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지만 실제 그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다. 유일하게 닮은 점은 호정과의 러브라인이다.
“극중 너무 호정에게 매몰찬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실제 저도 그래요. 저에게 호감을 가져주시는 것은 좋지만, ‘희망 고문’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마음이 없으면 깔끔하게 선을 긋는 편이에요. 그게 저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우리 드라마는 너무 할 얘기가 많다”라며 “지금은 서영이에 포커스가 많이 맞춰져 있지만, 외적으로 풀어낼 얘기가 많다. 무겁지 않게 편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지속적인 관심을 바랐다.
최근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인기코너 ‘거지의 품격’에 출연하며 개그 본능을 발휘했던 박해진은 요새 어딜 가나 ‘개콘’ 얘기를 듣는다. 다들 ‘허경환과 정말 닮았더라’라며 신기해한다. 대중과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다.
박해진은 지난달 21일 방송된 ‘개콘’에서 꽃거지 허경환의 쌍둥이 형제로 전격 출연했다. 꽃거지로 완벽하게 빙의된 모습을 보이며 “궁금해요? 궁금하면 700원”이라는 대사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고 허경환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해 웃음을 안겼다.
그가 꽃거지로 분한 이유는 공약 때문이다. 허경환은 자신의 SNS를 통해 ‘거지의 품격’ 출연 제의를 했고, 박해진은 ‘내 딸 서영이’ 시청률이 30% 돌파하면 출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가 ‘개콘’에 출연했으니, 허경환 씨에게도 ‘내 딸 서영이’ 깜짝 출연해달라고 할까 봐요. 흔쾌히 출연해 주시겠죠?(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박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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